김기철 문화부장
김기철 문화부장

그들이 돌아왔다. 거의 10년 만이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에 장관까지 새 정부 요직에 속속 입성하고 있다. 그간 절치부심한 덕분인지 핏발 섰던 눈빛은 많이 부드러워졌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닌 60년대생 정치인과 운동권 지식인 그룹, '86세대' 얘기다.

30대로 접어든 1990년대부터 '386세대'로 불렸던 이 그룹은 기성세대를 공격하는 가장 강력한 비판 세력이었다. '4·19세대' 이후 이렇게 각별하게 주목받은 세대는 없었던 것 같다. 시민 단체와 학계에 진입한 이들은 일찍부터 주목받았고, 일부는 정치권에 들어가 386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정신적 386'을 자처한 노무현 대통령 시절은 이들이 처음 맛본 황금기였다. 노 대통령은 이들의 동지(同志) 역을 기꺼이 떠맡았고, 386 정치인들은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를 뒤엎겠다'며 노무현 정부의 전위부대로 앞장섰다.

노무현 정부 당시 마흔 전후의 소장파였던 86세대는 이제 오십을 넘긴 중년이 됐다. 인구 구조로 따져도 이 세대는 정부와 기업, 사회의 중견 간부층으로 허리 역할을 떠맡고 있다. 그러니 새 정부의 86세대 발탁은 새삼스러운 뉴스는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86세대가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세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청와대 본관에서 서훈 국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함께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대한민국호(號)'를 이끌 주력 부대이기에, 86세대의 과거는 비상한 관심을 끈다. 86세대 정체성의 뿌리는 '80년 광주'이다. 신(新)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미국이 이를 '방조'했다는 깨달음은 1945년 전후 대한민국에서 전개된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출발점이 됐다. 이승만·박정희 정부는 친미(親美) 독재 정권으로 비판하면서, 직접 경험하지 못한 북한의 김일성 정권에 대해 호감을 갖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좌우(左右) 진영 갈등으로 비화한 '역사 교과서 전쟁'의 한 축은 86세대였다. 지난 10여년간 역사 교과서 싸움에서 보수 진영이 번번이 무릎을 꿇은 것은 학계와 일선 학교를 장악한 이 86세대 때문이다. 좌편향 역사 기술로 문제가 된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엔 눈을 감고, 박근혜 정부가 만든 '국정교과서'를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폐기한 것도 86세대의 역사관(歷史觀)과 깊은 관련이 있음은 물론이다.

정권과 싸우면서 다진 도덕적 자기 확신과 정의 독점은 86세대의 또 다른 특징이다. 입장이 다를 뿐인 상대방을 타도 대상인 적(敵)으로 간주하고, 우리 편과 그들로 진영 나누기를 좋아하는 것도 이 세대의 폐습이다. 이러다 보니 개혁을 한다면서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식의 진영 논리가 작동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장관을 지낸 유시민씨가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며 문재인 정부 지원 사격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학자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끊 임없는 자기 성찰'과 '집단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도덕적 잠재력'을 86세대의 특징으로 꼽았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남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길 바란다. 86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이끄는 '대한민국호(號)'의 성적표는 곧 이들의 자녀들이 내야 할 청구서로 돌아올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1/20170601037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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