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문재인]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아직 시기상조지만 정상회담은 필요"

- 김정일 가장 많이 만난 북한통
28년 3개월간 국정원서 근무, 대북 협상·전략 분야 베테랑… 盧정부 때 北담당 3차장 지내

- 국정원이 남북 관계개선 주도
徐 "대화 채널 먼저 복구해야"… 北에 각종 회담 제안 나설듯

- 일부선 우려 목소리
"北보위부·통전부와 두루 친분… 장점이지만 끌려다닐 가능성도"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서훈(63) 이화여대 북한학과 초빙교수는 10일 "지금 남북 정상회담 얘기를 꺼내는 것은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하다"고 했다. 서 후보자는 이날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군사적 긴장을 매우 낮출 수 있고 북핵 문제 해결할 수 있는 물꼬를 틀 수 있는 등의 조건들이 성숙되면 평양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 3차장(북한 담당)을 지낸 서 후보자는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과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을 모두 기획하고 추진했다. 대북 협상이 '전공'인 만큼 앞으로 국정원이 대북 접촉 및 남북 관계 개선을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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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김정일 만난 서훈 국정원장 - 후보자 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정견을 밝히고 있다. 지난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과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을 기획·추진했던 서 후보자는 이날“지금 남북 정상회담 얘기를 꺼내는 것은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고 했다. 오른쪽 사진은 서 후보자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과 함께 방북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난 모습. 왼쪽부터 서 후보자, 임동원 원장, 김정일. /뉴시스

하지만 남북 비밀 접촉뿐 아니라 대공·방첩 업무도 총괄해야 하는 국정원장 자리에 대북 협상에 특화된 인사를 기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서 후보자가 북한 보위부·통전부 요원들과 두루 친분이 있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북쪽 논리에 끌려다닐 우려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서 후보자는 최근 주변 인사들에게 "남북 간 대화 채널을 먼저 복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가 관리하는 판문점 적십자 채널은 작년 2월 개성공단 폐쇄 이후 북한이 일방적으로 차단했고, 국방부가 담당하는 서해 군(軍) 통신선도 같은 시기 끊겼다. 정보 소식통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국정원과 북한 통일전선부 간에 '핫라인'이 있었는데, 2011년 초 남북 비밀 접촉의 북측 책임자였던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 갑자기 처형된 이후 두절된 상태"라고 했다.

서 후보자가 이끌 국정원은 남북 간 긴장 완화를 명분으로 각종 회담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북측과 대화 채널 복구를 서두를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서 후보자는 평소 "남북 관계를 열어 놓아야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와 북핵 문제를 다룰 때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말해왔다. 개성공단 재개도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 등을 고려할 때 당장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국정원 개혁에 대해선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근절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숙제가 아니다"며 "많은 정부에서 그런 노력을 시도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왔다"고 했다. 이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정치 개입·선거 개입·사찰 등 이런 일들로부터 근절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문재인 정부에서는 반드시 국정원을 정치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겠다"며 "어떤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정치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는 방법인지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서 후보자는 28년 3개월간의 국정원 경력 대부분을 북한 관련 업무로 채웠다. 서울 출신인 그는 서울고와 서울대 사범대를 나와 1980년 공채 17기로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 들어갔다. 대공(對共) 분야에서 경력을 쌓다가 1996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표로 북한 신포 지구에서 2년간 상주한 이후 대북 협상 및 전략 전문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당시 다양한 북측 인사들을 만나 그들의 협상 스타일을 익힌 것이 이후 북한과 협상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됐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 후보자를 "평생을 국정원에 몸담은 남북 관계 전문가로 북한 업무가 가장 정통하다"고 평가했다.

서 후보자는 김대중 정부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때 국정원 'KSS 라인'의 일원이었다. 'KSS 라인'은 김보현(3차장)→서영교(대북전략국장)→서훈(대북전략조정단장)으로 이어지는 대북 협상 채널을 뜻한다. 2000년 당시 대북 특사였던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수행해 베이징에서 북측과 비밀 협상을 했고, 임동원 국정원장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때도 동행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과 국정원 대북전략실장을 역임하고 2006년 11월 북한 업무를 총괄하는 3차장에 기용됐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총괄하고 정상회담문 작성을 주도했다. 서 후보자는 김정은 부친인 김정일을 가장 많이 만나본 국내 인사로 꼽힌다. 김정일뿐 아니라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2013년 사망 ),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2015년 사망) 등과도 회담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는 이화여대에서 북한학 강의를 했다. 이번 대선에서 선대위 안보상황단장을 맡아 바쁜 와중에도 강의를 빠뜨리지 않았다. 국정원 차장을 지낸 A씨는 "(서 후보자는)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으로 조직 내 평판이 좋았다"며 "혼자 전략을 고민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1/20170511002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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