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北개입 드러나자… 野 대선주자들 대북정책 고심]

- 규탄은 하지만
北 지목 않고 "~라면" 전제 붙여 "중대한 범죄" "반인륜적" 비판

- 대북정책은 그대로?
지도부 "대화·제재 병행전략 유지"… "제재 흐름 따라야" 목소리도 커져
여권의 안보 검증 공세 우려도
 

북한이 김정남 암살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더불어민주당과 대선 주자들의 대북(對北) 정책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문재인·안희정 후보와 야권 주류(主流)는 "북한이 암살을 지시했다면…"이라는 전제를 붙이고 규탄에 동참하고 있지만,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및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 핵심 대북 정책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당 내부는 "그래도 대화밖에 없다"와 "국민 정서와 국제적 제재 흐름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양론이 혼재하고 있다.

 

홍보 동영상 ‘주간 문재인’ 촬영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2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정책 홍보 동영상인 ‘주간 문재인’을 촬영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홍보 동영상 ‘주간 문재인’ 촬영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2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정책 홍보 동영상인 ‘주간 문재인’을 촬영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민주당 핵심 인사들은 "여러 가지 엉성하고 이상하다"며 의구심을 품었던 사건 초기보다는 북한 소행이라는 쪽으로 판단이 기울고 있다. 하지만 북한을 암살 배후로 아직 확정해서 지목하지는 않고 있다. 일찍부터 북한을 지목했던 정부와는 온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북 발언 때마다 "~라면"이라는 전제를 붙인다. 문재인 후보는 19일 "만약 북한의 지령에 의한 정치적 암살이라면 전 세계가 규탄해야 마땅할 중대한 테러 범죄"라고 했다. "정치적 암살이라면 야만적인 일이다. 우선은 사실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던 16일 발언보다는 진전했지만 여전히 신중론이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도 20일 당 회의에서 "북한은 책임 있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배후가 밝혀진다면 북한의 반인륜적 행위는 국제사회의 비판과 고립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도 "북한 국적의 용의자가 살해에 관련됐다면 북한이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국제법상 관례"라고 했다.

 

‘민주당 여성위’ 행사 참석 - 더불어민주당 안희정 후보가 20일 대전 유성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민주당 여성위’ 행사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 여성위’ 행사 참석 - 더불어민주당 안희정 후보가 20일 대전 유성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민주당 여성위’ 행사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뉴시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북 정책을 크게 수정하거나 우선순위를 '대화'에서 '제재'로 변경시킬 계획은 현재까지는 없다. 문 후보 캠프 총괄본부장인 송영길 의원은 "북한이 김정남 피살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에 대북 정책을 갑자기 바꿀 이유도 없다"며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예측 불가능하지만, 여전히 통제하고 협력을 끌어내야 할 존재"라고 말했다. 전병헌 전략본부장도 "지금 상황에서 당장 북과 대화할 수도 없고 국제 제재와 따로 갈 생각도 없다. 상황이 바뀐 건 없다"고 했다. 북핵 해결을 위해선 대화와 제재라는 두 가지 수단을 써야 한다는 기존 전략에 변화는 없다는 것이다. 안희정 후보 측도 이번 사건의 반(反)인권성을 지적했지만, "선제 타격론, 북한 급변론과 같은 사고를 증폭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대북 정책 방향은 아니다"고 했다. 야권에서는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같은 도발과 달리, 이번 사건은 북한 내부의 '권력 다툼'이기 때문에 대북 정책의 변화와는 관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금태섭 전략위원장은 "우리도 이번 사안 자체는 경악하고 있지만, 형제를 죽인 것과 핵실험을 하는 도발과는 성격이 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내부적으로 대북 정책에 대한 재검토 분위기도 일부 감지되고 있다. 문재인 캠프 측 관계자는 "북한 밖에서 벌어진 암살 행위라는 점에서 장성택 처형 등 북한 내부 숙청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북한 내부가 생각보다 매우 불안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 후보 측은 자신들의 싱크탱크 주최로 긴급 안보 간담회를 여는 등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문 후보 측 박광온 의원은 "당장 답을 내놓기보다는 국론을 모아가는 신중한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국회 국방위 소속인 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대화와 제재라는 민주당의 큰 방향에는 변화가 없겠지만 대북 제재와 관련된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희정 후보 측도 "북한 정권의 비인도성과 비정상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민주당과 대선 주자들은 여권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야권 주자들에 대한 안보 공세로 나올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문재인 후보 측은 "여권이 이번 사건을 '종북몰이'나 '색깔론'의 소재로 활용한다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사건 초기에는 암살 배후와 관련한 각종 '음모론'도 야권에서 많이 돌았지만 북한 공작원들의 실체가 하나둘 드러난 이후에는 수면 밑으로 들어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21/20170221003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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