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혁 정치부 차장
임민혁 정치부 차장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국 국무부 브리핑장에서 존 커비 대변인과 AP통신 기자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수십만이 희생된 시리아 '알레포 비극'에 대한 미국의 책임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미 정부는 시리아 사태를 개탄하고 비난하는 메시지만 반복적으로 내놨을 뿐, 전혀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다."(기자)

―"가장 큰 책임은 러시아에 있다. 러시아가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가장 큰 영향력이 있다."(대변인)

―"미국은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하다 잘 안 되면 비난만 했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시리아 내전의 일시적 중단은 있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기자)

―"국제사회의 노력에 미국이 리더 역할을 해온 건 맞는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에서 사태 해결을 위해 채택한 여러 결의안에는 러시아도 사인했다. 미국만의 책임은 아니다."(대변인)

―"그래서 다른 해결책은 뭔가."(기자)

―"군사력 동원은 답이 아니다. 정치적 대화로 풀어야 한다."(대변인)

―"상황을 바꿀 다른 해결책을 전혀 제시 못 하고 있지 않나."(기자)

이 설전에서 '시리아'를 '북한'으로, '러시아'를 '중국'으로, '아사드'를 '김정은'으로 바꿔보자.
 

언제쯤 걱정없이 살 수 있을까… 탈출하는 주민들- 지난 12일(현지 시각) 시리아 내전(內戰)의 최대 격전지인 알레포에 대한 정부군의 폭격이 계속되자 주민들이 탈출하고 있다. 유엔은 “알레포 동부 지역을 장악한 친정부군 세력이 민간인 82명을 사살했다”며 민간인 대량 살상 가능성을 우려했다. 시리아 최대 도시이자 상업 중심지였던 알레포는 지난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정부군과 반군이 동서로 나누어 장악하고 있었다. /AFP 연합뉴스
언제쯤 걱정없이 살 수 있을까… 탈출하는 주민들- 지난 12일(현지 시각) 시리아 내전(內戰)의 최대 격전지인 알레포에 대한 정부군의 폭격이 계속되자 주민들이 탈출하고 있다. 유엔은 “알레포 동부 지역을 장악한 친정부군 세력이 민간인 82명을 사살했다”며 민간인 대량 살상 가능성을 우려했다. 시리아 최대 도시이자 상업 중심지였던 알레포는 지난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정부군과 반군이 동서로 나누어 장악하고 있었다. /AFP 연합뉴스

"미국은 북한 핵개발을 비난했지만 이를 막지 못했다. 미국은 북한 지도자 김정은에게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중국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해왔다. 안보리에서 중국이 사인한 대북제재 결의안이 5개나 있지만 바뀐 것은 없다. 북한이 일시적으로 도발을 중지한 적은 있지만, 미국의 외교적 노력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국은 '핵시설 정밀타격' 등은 해법이 아니라며 외교적 해결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꽉 막혀 있는 상황을 돌파할 적극적인 움직임은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 이후 미국의 '고립주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사실 미국이 국제 문제에서 발을 빼려는 조짐은 수년 전부터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가벼운 발자국(light-foot print) 정책'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개입을 최소화했다. 알레포 비극에 대해 "미국 등 서방의 묵인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남의 분쟁에 미국 돈 쓰는 것을 원치 않는 민심을 업고 당선된 트럼프는 당장 미국의 안보·경제 이익이 침해당하지 않는 한 북핵 문제를 더욱 뒷전으로 미룰 가능성이 크다. 국무장관 등 주요 외교안보 내정자 성향을 보면 이는 더 명확해진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북핵 상황의 심각성을 잘 아는 실무자들은 계속 자리를 지 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새 정부에서도 계속 임무를 맡게 될 것 같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미국 새 정부를 설득해 끌어들이고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하는 숙제는 우리 외교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 국무부에서 훗날 '돌이킬 수 없는 북핵 비극' 책임을 놓고 설전이 벌어지는 장면은 상상하기도 싫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19/20161219028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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