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혁 정치부 차장[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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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때 북핵(北核) 협상을 담당하며 북한을 몇 차례 방문했던 한 외교관은 당시 북한 측으로부터 '토법'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고 했다. 토법은 '토착공법'의 줄임말로, '순수한 자체 기술'을 뜻하는 북한식 조어(造語)라고 한다. 북한 관리들은 틈만 나면 "핵·미사일은 외부 도움 없이 우리의 노력과 땀으로 이뤄낸 성과"라고 자랑했고, 그때마다 빠짐없이 이 단어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2009년 영변 원자로의 핵연료봉 처리 논의가 진행 중일 때, 북한의 한 과학자는 "토법으로 만든 연료봉은 내 자식들과 다름없다. 이 아이들을 내 손으로 부술 수는 없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북한의 이런 '토법 자부심'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나라는 거의 없다. 북한이 러시아·이란·파키스탄 등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핵·미사일 기술을 전수받은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에서 순수 기술이 몇 %나 역할을 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꾸준히 핵·미사일 기술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그것도 역사상 가장 가혹하고 촘촘하다는 국제사회의 제재에 맞서가며 추진 중이다.

5번 연속 발사 실험에 실패해 "무기로서의 가치가 없다"던 미사일에 대해 어느샌가 "괌 미군기지를 타격할 수준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 열병식에 '가짜 미사일'을 선보여 국제사회의 조롱을 받던 것이 2~3년 전인데, 지금은 가장 어렵다는 '탄두 대기권 재진입 기술'도 진전을 이뤘다고 한다. 핵탄두 소형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술 발전도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 전직 안보 부서 당국자는 "핵·미사일을 만들어내라는 김정은의 한마디에 밑의 사람들은 말 그대로 목숨 내놓고 매달리는 게 북한 아니냐. 인민들이 굶어 죽든 말든…. 이런 비상식적인 집단을 우리 상식선으로 판단하니 예측이 자주 빗나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김정은의 핵·미사일 질주는 거침없는 반면, 국제사회의 대응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파키스탄이 북한 핵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물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이를 사실상 묵인했다"는 인도 언론의 최근 보도는 국제사회의 제재 시스템에 여전히 '구멍'이 뚫려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현상', '브렉시트' 등으로 대표되는 고립주의의 확산은 이런 구멍을 더 크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결국 북핵을 둘러싼 각국의 엇갈린 이해관계를 조율할 창의적인 해법을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일 수밖에 없다. 지금 정부의 최고 엘리트 인재들이 북한 업무를 담당하며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있지만, 북핵 해법 찾기는 역량과 노력뿐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토법'에 대해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핵·미사일 개발을 향한 저들의 광기(狂氣), 집요함, 무모함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우리에게도 이에 맞설 절박함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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