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함경도에서 중국으로.중국에서 필리핀으로. 필리핀에서 다시 한국으로.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 중국 당국에 의해 강제 추방돼 필리핀에서 피말리는 사흘밤을 지낸 탈북자 25명이 1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서울에 도착, 첫 밤을 보내게 됐다.

이들을 태운 대한항공 KE-622편은 당초 출발 예정시간보다 25분 가량 늦은 이날 오후 1시5분(필리핀 현지시간)께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을 출발, 오후 5시 21분께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일반 승객들이 먼저 내린뒤 공항 여객터미널 2층 9번 게이트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25명의 탈북자들은 게이트 앞에서 잠시 포즈를 취한 뒤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간단히 심경을 밝혔다.

함경북도 온성 출신인 최병섭(52)씨는 '중국에 가서 차별 받으니까 한국 땅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며 '중국에서는 우리를 잡아갔고 그래서 차라리 한국 가서 자유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국행 결심 배경을 밝혔다.

또 이 성(43)씨는 스페인 대사관 진입에 참가한 다른 탈북자들과 서로 알게된 시점이나 경위와 관련, '지난 1일에 10명이 모였고 그 후에 25명이 모였다'며 '서로 대사관 들어가기 직전에 알게 됐다'고 밝혔다.

고아 소녀인 김 향(15)양은 수줍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중국보다 한국이 낫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 꿈은 어려울 때 도와주신 중국분들 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고 다부지게 밝혀 눈길을 끌었다.

또 이들은 '아이들을 좋은 곳에서 교육 시키고 싶다' '정착해서 법에 따라 자유롭게 살면서 희망하는대로 살고 싶다'는 등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을 보이기도 했다.

장시간 비행으로 탈북자 가운데 일부는 다소 피로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체로 평온을 잃지 않았으며 문답 내내 보도진을 향해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등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간단한 환영행사를 마친 이들은 공항 관계자들과 관계 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별도의 통관절차 없이 귀빈 전용 `더블 도어'를 통해 곧바로 입국, 1층 귀빈 주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은 이날 관계당국의 보호시설로 옮겨져 휴식을 취한 뒤 정밀 건강진단에 이어 정부 관계부처 합동신문을 받게 된다.

정부 당국자는 '이들은 합동신문 등의 절차를 마치고 5월 중순께 탈북자 정착지원 시설인 경기도 안성의 하나원에 입소하게 될 것'이라며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필요한 절차를 밟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의 탈북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던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 박사와 이 서 목사 등 국내 탈북자 구명 단체 관계자들도 이들의 무사 입국을 환영하기 위해 공항에 나와 탈북자들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기도 했다.

폴러첸 박사는 이날 한국 기자들에게 '한국 정부가 왜 탈북자 문제에 적극 나서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목사는 '현 상황에서는 당분간 중국에 탈북자가 늘어날 것이고 우리 정부가 나서더라도 난민 지위가 인정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민간 단체들이 적극 나설 때에만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탈북자들은 지난 14일 오전 11시께 베이징 주재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 '난민 지위 인정'과 '한국행'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중국 정부의 '제3국 추방' 결정으로 지난 15일부터 필리핀 마닐라시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부근 아귀날도 기지 안에서 머물러왔다./영종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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