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成弼
/북한인권시민연합 기획이사·전 이화여대 교수

중국 주재 스페인 대사관으로 목숨을 건 질주를 감행했던 25인의 탈북동포들이 왔다. 이들의 질주는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며, 영화보다도 더 영화적이다. 운동화 차림에 모자를 눌러쓰고 경비원을 밀치며 뛰어들어 두손을 들고 환호하는 모습, 결정적인 순간에는 ‘인간띠’라도 만들겠다는 듯 취재와 탈북자 보호를 위해 몰려든 서방기자들, 수시간 후 상황설명을 위해 나타난 독일인 의사의 모습….

이들의 귀향은 다른 한편으로 의문과 아쉬움도 없지 않다. 왜 외국 공관인가? 어떤 이유로 한국인이 아닌 독일인의 설명을 들어야 하며, 외국단체들과 서방기자들의 활약들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중국정부의 단속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이제 남은 탈북자들과 이들을 돕는 지원자들의 앞 일은 어찌될 것인가?

중요한 것은 ‘탈북’은 ‘인권’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점이다. 탈북자의 한국행은 인간적 생존과 기본적 인권의 보장이 가능한 자유와 인권의 땅으로 귀향한 것이다. 때문에 탈북자 문제는 ‘국제정치’나 ‘외교’ 문제이기 전에 ‘인권과 인도주의’ 과제로 이해되고 해결돼야 한다. 그동안 민간 차원에서 펼쳐온 북한인권 옹호활동은 북한인권 문제를 국제적으로 ‘인류애와 개인의 인권보호’의 과제로 인식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우리 정부와 관련 당사국들도 탈북자 문제를 엄격히 ‘인권’의 문제로 분리, 별도의 현안으로 다루어야 한다. 더 이상 ‘비겁한 정부’라는 책망을 들어선 안된다. 특히 중국 정부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 WTO(세계무역기구) 가입과 더불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중국 정부는 무엇보다 탈북자 처리에 있어 ‘북·중 협약’보다 유엔 회원국으로서의 인권존중과 국제인권법상 의무이행에 주력해야 한다. 강제송환은 중지돼야 하며, 탈북자들에 대한 난민지위를 부여하라는 국제사회의 요청을 더 이상 무시해서도 안된다.

또한 탈북자 문제를 비공개리에 해결하는 방식에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 탈북자들의 생명과 인권뿐만 아니라, 그들을 돕는 국내외의 인권 옹호자들의 안전과 활동보장의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이들에 대한 민간 차원에서의 지원 역시 지금까지의 비공식적이고 소규모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활성화된 체제로 탈바꿈되어야 하며, 국제적 협력과 인지 속에서 보다 안정적인 해결방식을 위한 합의의 도출을 위한 노력이 개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 사회 내부의 문제이다. 탈북형제들의 귀향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이 땅에서 또 다른 삶을 향한 험난한 질주를 계속해야 한다. 북한의 강제수용소도, 죽음의 공포도 막지 못했던 그들의 삶을 향한 의욕이 우리 사회 내부의 또 다른 현실 속에서 꺾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이 탈북을 감행했던 이들의 용기를 무너뜨려선 안된다.

그동안의 현실은 탈북가족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미래를 향한 꿈들을 접고 있다.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문제는, 다시 이혼과 가정생활의 파탄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다시금 그들을 내몰아 북한이나 중국이 아닌 한국의 밤거리를 떠돌게 한 것이다. 이들에게 또 다시 삶을 향한 질주를 강요하는 것은 가혹하다. 이들의 사회정착을 위한 근본적인 제도적 장치 마련과 이들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탈북자 인도지원 사업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상설적인 교육시설의 마련에 집중적인 지원과 협조가 있을 수 있기를 강력히 기대한다. 하나원에서의 일시적인 정착지원 교육은 성인은 물론, 청소년들의 한국사회 적응준비 과정으로써 너무 부족하다. 민간봉사자들은 시설만 마련될 경우 봉사하겠다는 열의로 충만돼 있다. 우리 정부와 사회가 이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는 탈북동포들을 도우려 한다면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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