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추구할 최우선 가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與野, 북핵 위기 앞에서도 대한민국 수호 의지 안 보여
100년전 청·일·러 사이에 껴 지리멸렬하던 모습 보는듯
 

류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류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조건부 대북 협력 기조가 북한의 핵무기 실험이라는 결정적 배신 앞에서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 2014년 3월 드레스덴 구상에 따라 제시된 '통일 대박'이 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속절없는 과거 일이 된 것이다. 올해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남북 관계는 급랭을 넘어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대북 포용 정책을 채택한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발언이 마침내 스스로 파산한 지 한 달 만에, 박근혜 대통령은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며 2월 10일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이로부터 일주일 후인 2월 16일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개성공단 폐쇄는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며 북한의 '체제 붕괴'까지 언급했다.

보름 후 3월 2일 UN 안보리는 사상 최강의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다시 이로부터 한 달 후 3월 31일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마친 시진핑 중국 주석은 대북 제재 결의안을 '전면적이고 완전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히 밝혔다. 이와 동시에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 연합훈련이 3월 7일 시작돼 4월 30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간의 훈련이 북의 도발에 대응하는 방어 훈련이었다면, 이번 훈련은 북 최고 수뇌부와 핵심 시설 정밀 타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 바야흐로 북한의 '체제 붕괴'를 목표로 하는 변화의 조짐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들이다.

그러나 북한이 '처절한 대가'를 맛보게 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이 녹록지 않다. 우선, 중국이 천명한 대북 제재 협조의 배경에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봉쇄하기 위한 노림수가 숨어 있다. 다음, 미국의 '핵우산' 즉 동맹국을 지키기 위한 핵무기 사용을 과연 100%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우려 또한 확산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한 미국의 핵우산은 이미 북한에 의해 찢겼기 때문에 한국은 물론 일본이나 대만 또한 자위적 핵무장이나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의 유력한 대선 후보 하나는 한반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한국과 일본의 자위적 핵무장을 허용해야 한다고 공언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북한의 핵무장 때문에 이렇게 큰 소용돌이를 겪는다면 북한과 마주하며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크고 작은 도발을 인내해 온 대한민국으로서는 내부적으로 더욱더 북한 핵을 종결시키기 위한 논의가 활성화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장이라는 대형 사고를 지켜보는 우리 사회 내부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다는 모습이다. 열흘 후로 다가온 총선에서도 북한 핵 문제는 전혀 쟁점이 되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대표는 북한 핵과 싸우기는커녕 같은 당 공천관리위원장과 다투더니 마침내 공천장에 찍을 '옥새'를 들고 잠적했다가 나타나 여당의 텃밭인 대구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양산된 무소속 후보들은 흰 옷 입고 다니며 유권자와 말싸움이나 하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를 전후해 잠시 야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북한 궤멸론'을 언급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표는 친북 좌파 운동권 청산을 화두로 작년 말 정치권에 화려하게 컴백했었다. 그러나 공천 파동을 겪으며 자신의 비례대표 자리를 확보한 뒤로는 아예 이 문제를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선거 지도부뿐만이 아니다. 경찰 근무 경력이 있는 '국민의당' 후보는 김정은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을 저격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포스터를 인터넷에 올렸다가 슬그머니 내렸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적진에 있는 우리들의 동지 남조선에 있는 진보 세력'인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에도 화장을 고쳐 '민중연합당'으로 이번 선거에 다시 기웃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건 야건 정치권은 북핵 위기 앞에서 대한민국을 구하겠다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 정치가 추구해야 할 가치의 최우선 순위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기본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 한반도를 둘러싼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러시아의 주도권 다툼 사이에서 지리멸렬하던 그때와 어찌 그리 똑같은가.

국회에서의 대통령 호소가 가슴을 때린다. "북한의 도발로 긴장의 수위가 최고조에 다다르고 있는데 우리 내부에서 갈등과 분열이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의 존립도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국민적 안보 태세를 점검하고 통일 정책을 재평가하는 논의가 다른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이 위기를 단합된 힘으로 헤쳐나가면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발판 삼아 우리가 '통일 대박'을 다시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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