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북파공작원 임무자 전국연합대회」를 목격한 시민들은 마치 자신이 전장 한복판에 서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시위대와 경찰이 심한 몸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곳곳에서 LPG 화염이 치솟고 쇠파이프와 투석이 난무하는 등 격전을 방불케 했기 때문이다.

「HID(육군첩보부대) 북파공작 전국연합동지회」 소속 회원들로 밝혀진 시위대의 과격한 행동 자체는 바람직스럽지 않은 방식이다. 그러나 그렇게 극단적인 행동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면 우리는 거기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위대의 요구사항은 두 가지였다. 자신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정부가 약속한 보상을 즉각 이행하라는 것이다. 정부가 자신들을 북한에 파견해 특수활동을 벌이도록 했음에도 그 실체(實體)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금전적 보상 등 공작원으로 채용할 당시의 약속도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실체에 대해서는 정부도 사실상 인정한 지 꽤 오래다. 지난해 7월 국군정보사령부는 국회 정무위 브리핑에서 『참전군인 지원법의 적용대상에 특수임무 요원을 포함시키는 조항을 신설해 이들에게도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후 아무런 후속조치를 하지 않은 채 이제껏 문제해결을 늦춰왔던 것이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허둥지둥 해법찾기에 나서는 정부의 무책임성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이들의 한(恨)을 풀어주고 적절한 보상도 해주어야 할 것이다. 정부 나름의 고민도 있을지 모른다. 북파공작원 문제는 남북관계상 미묘한 문제여서 그것을 공식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이 문제가 지금처럼 악화되지 않도록 진작부터 조용한 해결책을 강구했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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