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계열 탈북자 운동가인 A씨와 B씨는 15일 탈북자 25명의 주중 스페인 대사관 진입 사건과 관련, '이번 사건은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운동가의 제안으로 국내외 단체들이 호응해 벌어진 일'이라며 지난해말부터의 준비과정을 비교적 소상히 털어놨다.

다음은 이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그동안의 준비과정 등을 재구성한 것.

▲배경 = 지난해 6월 장길수(18)군 일가족 7명의 베이징(北京)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농성 직전 이 사건을 주도한 '길수가족운동본부'에서 일하는 C씨가 국내 탈북자 관련 단체 활동가들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만 해도 국내 단체들의 반응은 찬반 양론으로 엇갈렸다. 사건 이후 중국이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게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과연 일을 벌이는게 나은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던 것.

하지만 지난해말 중국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활동가 D씨가 '탈북자들의 대사관 농성'을 제안했을 때 국내외 활동가들의 의견은 대부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길수 가족의 한국행 이후 중국 당국의 탈북자 단속이 한층 강화됐을 뿐 아니라 한국인 활동가가 중국 당국에 억류되는 일마저 생겼기 때문.

한편 길수 가족 사건 때만 해도 국내 단체들만 호응했지만 이번에는 국내외 단체들간에 연대 움직임이 강화됐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B씨는 '국내 단체들이 주도하고 표면상으로만 외국 단체들을 내세웠다는 일부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며 '어차피 이번 일을 주도한 것은 중국에 있는 한국인 활동가이고 국내외 단체들 모두 그에게 호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준비 = 이번 사건의 준비과정에서 특히 어려웠던 점은 대사관에 들어갈 탈북자들을 선정하는 것과 '거사 일자' 등이었다.

한국행을 원하며 중국에서 떠돌고 있는 탈북자들이 적게는 수만명에서 많게는 수십만명에 이른다는점에서 누구를 이번 계획에 참여시킬 것인가를 두고 관련 단체들이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것.

B씨는 '탈북자들이 대사관에 들어가 망명 신청을 하게 되면 곧바로 대사관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에서 어느 정도 신분이 보장된 사람들로 '거사자'를 구성했다'며 '25명의 출신 지역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팀을 꾸리는데 애를 많이 먹다가 올 초에서야 팀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망명 일자를 선택하는 것도 역시 어려운 문제였다.

B씨는 '일주일 중 중국 공안들의 대사관 경계가 가장 느슨한 날을 잡기로 했는데 그 날이 바로 목요일이었다'고 설명했다.

▲문제점 = 한 탈북자 단체 관계자는 '북한이나 중국이 이번 사건에 한국인들이 개입돼있는 점을 들어 이 사건의 성격을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갈까 겁난다'며 '지난해부터 탈북자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해온 중국이 '제 발등을 찍은 격'이라는 점을 깨달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이번 사건의 역풍이 예상외로 거세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사건 준비과정에 개입한 한 탈북자 단체 관계자는 '스페인 대사관에 들어간 이들이 북한으로 돌려보낼 경우 자살하겠다고 하는 것은 단지 말뿐만이 아니다'라며 '이들은 실제로 죽을 각오를 하고 대사관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 '탈북자 단체들이 너무 단순한 생각에서 일을 벌였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한 정부 관계자는 '만약 북한이 이들을 살인 등 범법자로 몰면 중국은 최악의 경우 25명조차 제3국으로 추방하지 않고 북한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다'며 '언론 플레이는 국내외 단체들보다 중국이나 북한이 더 잘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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