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일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이날 최고의 수사(修辭)를 동원해가며 상대를 치켜세웠다. 박 대통령은 한·중관계를 '환난지교(患難之交·어려울 때 함께한 친구)'에 비유했고 시 주석은 '이심전심'이라 화답했다. 시 주석은 오늘 열리는 중국의 항일(抗日) 전승 행사에 참석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30개국 정상 중 유일하게 박 대통령과 단독 오찬까지 함께했다. 한·중 외교가에선 두 나라 관계가 '역대 최상(最上)'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 간의 정상회담은 이번이 6번째다. 시 주석은 박 대통령이 가장 자주 만난 외국 지도자인 셈이다. 반면 한때 서로를 혈맹(血盟)이라고 부르던 북·중 사이에는 정상 간 교류가 단절된 상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2012년 집권 후 아직 중국을 방문하지도 않았고 시 주석과 얼굴을 맞댄 적도 없다. 이 극명한 대비야말로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의 무게 중심이 어디로 기울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날 회담 후 공동발표문에서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시 주석은 "한반도가 장래에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했다. 한·중 관료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통일 문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자주 있었지만 한·중 정상회담에서 공개적으로 '통일 관련 심도 있는 논의'가 오갔다고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간 중국 측은 공식 회담에서 통일 관련 이야기를 나눴어도 이런 사실을 공개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중국의 이런 모습은 미국·일본·유럽 등 서방의 모든 지도자들이 불참키로 한 전승 행사에 박 대통령이 참석한 데 대한 답례 차원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한·중 정상이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북한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는 것을 공개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통일 관련 논의를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떤 행동에도 반대한다"는 데 뜻을 함께했다. 이런 입장은 과거 정상회담에서도 나온 적이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북에 대한 명백한 경고라고 해석할 수 있다. 북은 지난달 지뢰 도발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불러왔다. 우리 측이 확성기 방송을 11년 만에 재개하자 북은 남북 고위급 접촉을 요구했고, 나흘간의 협상 끝에 내놓은 공동보도문에서 '유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당분간 남북대화가 이어지더라도 북은 언제든 다시 도발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9일 북한 국가창건일과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을 전후해 4차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이 메시지는 이런 도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시 주석에게 북의 지뢰 도발 후 벌어진 위기 상황에서 한·중이 '긴밀히 소통'했고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중국 정부는 이제 한반도 정세 불안이 중국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때문에라도 북을 두둔하지 않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북은 추가 핵·미사일 시험이 제 발등을 찍는 꼴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두 정상은 북핵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 필요성에도 공감했다고 했다. 그러나 6자회담은 한·중만 합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미국은 6자회담 대표조차 임명하지 않고 있다. 회담 재개에 대한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두 정상은 오는 10월 말이나 11월 초 한·중·일 정상회담을 열기 위해 노력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3국 회담은 2012년 5월 이후 과거사 문제로 인한 한·일, 중·일 충돌이 빚어지면서 3년 이상 중단된 상태다. 박 대통령은 중국 전승 행사 참석이 단지 중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도 아니고, 한·중이 반일(反日) 연대에 손을 잡은 것도 아니라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이런 한국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제안한 것이 한·중·일 3국 정상회담 재개(再開)다. 이번 3국 정상회담이 3년 넘은 한·중·일의 비정상적 관계를 정리하는 첫 계기가 되도록 3국이 모두 노력해야 한다. 3국회담을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여는 문제도 검토할 만하다.

한·중 관계는 이번 박 대통령의 방중(訪中)을 계기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협력 관계로 접어들었다. 중요한 것은 한·중 관계가 당장은 한반도 평화, 길게 보면 남북 통일의 열쇠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중국으로 기울고 있다는 미국을 비롯한 전통적인 우방 국가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일 역시 중요한 과제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처럼 두 나라 밖의 시선(視線)에 우리가 신경 써야 했던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10월 한·미 정상회담과 한·중·일 정상회담에 이르는 외교적 고비를 주도적으로 넘는 한편 남북대화를 비롯한 북한 문제를 다루는 우리의 역량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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