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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윤봉길 소개… 김일성 언급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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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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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단장한 中 항일전쟁기념관 '한반도 코너' 가보니] 안용현 베이징 특파원 르포

광복군 창설식 사진에 "中 지지 아래 설립" 설명

광복군 대원증·선전물 등 임시정부 史料 크게 늘려
韓·中 함께 무장투쟁 사실 강조하려는 의도인 듯
北 관련 큰 것은 3~4건뿐

중국이 항일 전쟁 승전 70주년을 맞아 베이징 근교의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을 재개관하면서 윤봉길 의사와 광복군 사진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관련 사료(史料)를 대폭 보강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중국은 이날 베이징 주재 내외신 기자 50여명을 상대로 중·일 전쟁 발화점인 루거우차오(蘆溝橋·노구교)와 인근의 항일전쟁기념관을 소개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 기념관은 6개월간의 전시물 교체 작업을 거쳐 지난달 다시 문을 열었다.
 
   
▲ 29일 재개관한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에는 윤봉길 의사의 사진과 함께‘(중국이) 한반도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문구가 걸려 있다(사진 왼쪽). 사진 오른쪽은 광복군 활동 사진. /안용현 특파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항일기념관은 '(중국이) 조선반도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제목의 코너를 만들어 약 30점의 한국 독립운동 사료를 전시했다. 윤 의사 사진과 상하이 의거 내용을 전시 벽면 중앙에 소개했고,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정이 8차례 옮겨 다녔던 고난의 역사를 표로 정리했다. 김일성이 찍힌 것으로 알려진 동북항일연군의 대표적 사진도 윤 의사 사진 바로 밑에 배치했다. 그러나 사진 설명에는 '중국 공산당 영도 아래 동북의 조선 인민은 대일 전쟁에 적극 투신해 동북항일연군의 일부가 됐고, (중국과) 공동으로 일본 침략자와 싸웠다. 사진은 연군의 조선인 전사'라고만 적었다. '김일성'이란 이름을 뺀 것이다. 반면 중국 포털 사이트 바이두(百度)로 같은 사진을 검색하면 등장인물 4명 중 맨 왼쪽이 '金日成(김일성)'이라 설명하고 있다.

기념관은 김일성과 달리 임정 김구 주석 및 광복군이던 안춘생·이시흥 선생의 사진과 이름은 그대로 밝혔다. 중국이 김일성 대신 임정을 부각하는 것은 한국을 향한 '우호 메시지'란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은 법통(法統)을 잇고 있지만, 북한은 임정을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9월 4일 상하이에서 열리는 임정 청사 재개관식에 참석한다.

항일기념관은 태극기를 배경으로 한 윤 의사 사진 옆에 '1932년 조선 항일의사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폭살했다. 그해 12월 일본에서 장렬하게 정의를 위해 희생됐다'고 적었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의 창설식 기념사진에는 '광복군이 중국 정부의 지지 아래 충칭에서 설립됐다'는 설명을 붙였다. 광복군의 훈련 사진과 1944년 11월 광복군 훈련반 제1기의 졸업식 사진도 등장한다. 항일 전쟁 당시 한·중이 손잡고 무장 투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기념관은 전시물을 대거 교체하면서도 조선의용대의 한 병사가 야산 언덕에 '중·한 양 민족이 연합해 일본 강도를 타도하자(中韓兩民族聯合起來打倒日本强盜)'고 적어놓은 사진은 바꾸지 않았다. 반면 북한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동북항일연군과 조선의용대 사료는 3~4건에 그쳤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북한보다 한국을 더 가깝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소리 없는 증거"라고 말했다.

   
▲ 중국이 항일전쟁 승전 70주년을 맞아 베이징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을 재개관하면서‘한반도 코너’에 임시정부 관련 증명서와 책자, 배지 등을 전시했다. 왼쪽 사진은 광복군 대원증. 대원증 오른쪽엔 김구 임시정부 주석 사진, 왼쪽 아래엔 독립운동가 이시흥 선생의 젊었을 때 사진이 붙어 있다. 대원증 제1항에는“우리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살신한다”라고 적혀 있다. 가운데 사진은 1941년 2월 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가 발행한‘광복’창간호. 오른쪽 위 사진은‘대한민국 림시정부’라고 적힌 배지다. /안용현 특파원[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中 항일전쟁기념관의 '한반도 코너' 새단장
기념관의 '조선반도(한반도)' 코너는 '대한민국 림시정부'라고 적힌 배지와 임정이 발간한 각종 증명서와 책자 등 임정 관련 사진과 문헌이 많았다. 1941년 2월 김구 주석이 항전(抗戰) 기념일에 발표한 '동포에게 고하는 글'과 같은 시기 광복군총사령부 정훈처가 발행한 '광복' 창간호 등이 전시돼 있다. 광복군 대원증에는 김구 주석과 독립운동가 이시흥 선생의 사진이 붙어 있다. 대원증 제1항에는 '우리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살신(殺身)한다'라고 적혀 있다.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이자 광복군 대장을 지낸 안춘생 선생의 자취도 선명하다. 기념관은 안 선생의 중국 군관학교 졸업장을 펼쳐놓으며 "1933년 12월 중국 육군군관학교 뤄양(洛陽) 분교는 (한국인을 위한) 특별반을 설립했다. 이후 특별반 졸업생은 광복군의 골간이 됐다"고 말했다.

기념관의 자오이(趙藝) 연구원은 최근 논문에서 "장제스 국민당 정부뿐 아니라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이끄는 중국 공산당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 공산당은 당시 기관지를 통해 임정의 군사 활동을 선전했고, 이후 임시정부가 광복군 창설과 더불어 국내 진공 작전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공산당이 임정을 지원한 시기는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임정이 상하이를 떠나 충칭에 정착하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최근 사설에서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 이유로 '중국이 임정에 은닉처를 제공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중국은 1987년 '노구교 사건' 50주년을 맞아 노구교 건너편에 이 기념관을 세웠다. 덩샤오핑(鄧小平)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직접 입구에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이라는 글씨를 썼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작년 7월 이 기념관에서 일제 침략자를 '일본 도적(日寇)'이라고 부르며 "침략 역사의 부정과 왜곡, 미화를 중국 국민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재개관한 기념관은 일제의 만행과 중국의 항전을 담은 사진 1170점과 문헌·사료 2834점을 새로 공개했다. 중국 공산당뿐 아니라 국민당 장제스의 활약, 중국에서 일제와 싸웠던 미국 항공대원의 사진, 현재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벌이는 베트남·필리핀의 항일 역사도 소개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30일 "국민당 소속 참전 군인이 이번 중국 열병식에 참석한다"며 "중국이 중화 단결을 강조하면서 (중국에서 외면당한) 국민당의 항일 전쟁 업적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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