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개봉 '연평해전' 어제 시사회… 유족들 북받친 눈물]

참수리 357 조타실에 北 85㎜ 포탄이 명중했다…
3D화면 가득 피와 살이 타는 30분 교전… 그날 서울은 월드컵 축제였다

자식·남편 처절한 전투… 예고편 보다 뛰쳐나가기도
"영화속 장면 99% 사실 같다" "아들이 자랑스럽다"
이순신 '명량'보다 공감대 크고 현실적 거리감 가까워
후원 7000명 이름, 11분5초간 엔딩크레디트 올라

13년이 흘렀지만 연평해전 여섯 용사의 유족들은 영화와 거리를 둘 수가 없었다. 자기 아들 또는 남편이 겪은 비극이었다. 그날의 상실감과 통증이 무조건 반사처럼 달려들어 유족들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영화 '연평해전'(감독 김학순)이 1일 밤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유족들에게 처음 공개됐다. 대한민국이 월드컵으로 붉게 물들었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부터 참수리 고속정 357호 승조원들은 서해에서 느닷없이 고립돼 목숨 걸고 싸우는 장면에 접어들자 유족들은 감정적으로 힘겨워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등받이에서 등을 뗐고 손수건을 눈가로 가져갔다.

영화로 부활한 '연평해전' 용사들 死鬪장면에 유족 또 오열 - 영화 ‘연평해전’이 1일 밤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여섯 용사 유족들에게 처음 공개됐다. 13년이 흘렀지만 고통은 아물지 않았다. 2002년 6월 29일 참수리 고속정 357호 승조원들이 서해 바다에서 느닷없이 고립돼 목숨 걸고 싸우는 장면에 접어들자 유족들은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아래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박상훈 기자
영화로 부활한 '연평해전' 용사들 死鬪장면에 유족 또 오열 - 영화 ‘연평해전’이 1일 밤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여섯 용사 유족들에게 처음 공개됐다. 13년이 흘렀지만 고통은 아물지 않았다. 2002년 6월 29일 참수리 고속정 357호 승조원들이 서해 바다에서 느닷없이 고립돼 목숨 걸고 싸우는 장면에 접어들자 유족들은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아래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박상훈 기자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하한 북한 경비정에서 날아온 85㎜ 포탄이 조타실에 명중하며 폭발했다. "펑!" 귀가 먹먹해졌다. 윤영하 정장(김무열), 조타장 한상국 하사(진구), 의무병 박동혁 상병(이현우) 등 참수리 고속정 357호 승조원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갑판에 나동그라진다. 모두 살아서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한상국 하사 아내 김종선씨는 이날 유족들이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예고편을 보다 밖으로 뛰쳐나가 길게 심호흡을 했다. 조천형 하사의 아내는 딸 시은이와 함께 극장에는 들어왔지만 영화 속에서 교전이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떴다. 화염 속에 스러지는 남편을 볼 마음의 준비가 안 됐던 모양이었다. 유족들은 우스꽝스러운 장면에서도 좀처럼 웃지 못했다.

박동혁 병장 부친 박남준씨는 "영화 속 장면이 99% 사실 같다"고 말했다. 한상국 하사의 모친 문화순씨는 "아들 시신 찾는 장면에서 엉엉 울었다. 고맙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윤영하 정장의 부친 윤두호씨는 "'짧은 인생, 영원한 조국애'라는 묘비명처럼 산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조천형 하사의 모친 임헌순씨는 "아들 보내고 오늘도 힘들었지만 이렇게 잘 만들어주신 분들께 감사한다"고 했다. 이날 밤 시사회에는 이희완 소령(당시 부정장)을 비롯해 권기형·전창성·이철규 등 연평해전 생존 장병들도 참석했다.

이 영화는 축제 속의 전투이자 외롭고 비현실적인 싸움의 기록이다. 한국 전쟁영화로는 처음 3D로 개봉하는 '연평해전'은 포탄과 총탄이 달려들던 그날의 현장을 아프게 대리 체험케 한다. 스크린 속 전투 장면 30분은 실제 있었던 교전 시간과 같다. 피가 흥건한 갑판 바닥으로 탄피가 숨 가쁘게 쏟아진다. 홍명보·안정환·황선홍 같은 2002 월드컵 국가대표 선수들은 기억하면서 그 축제를 지키다 숨진 연평해전 여섯 용사를 잊은 것이 부끄러워진다.

1일 밤 서울 CGV왕십리에서 열린 ‘연평해전’ 시사회에서 주연배우 진구·이현우·김무열(왼쪽부터)이 경례를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학순 감독. /이태경 기자
1일 밤 서울 CGV왕십리에서 열린 ‘연평해전’ 시사회에서 주연배우 진구·이현우·김무열(왼쪽부터)이 경례를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학순 감독. /이태경 기자

이 영화는 2002년 4월 별명이 '약통(藥桶)'인 의무병 박동혁이 천안함에서 357호로 전입해 오며 시작된다. 카리스마 넘치는 '독쟁이' 윤영하와 수병들이 좋아하지만 남모를 상처가 있는 한상국이 맑고 책임감 강한 박동혁과 더불어 이 드라마의 세 기둥이다. 전쟁영화지만 이들의 끈끈한 관계, 남겨진 가족의 애환을 서정적으로 뭉쳤다. 누구나 끝을 아는 비극이지만 파도 벼락, 꽃게 라면, 인간 안테나, 애인 면회 같은 장면이 희극적 쉼표를 찍어준다. 연평해전 직후 논란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당시 TV 화면을 통해 전한다.

영화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카드 섹션을 보여주고 경기장과 광장의 함성을 들려준다. 그날 참수리 357호 승조원들은 불길한 감청 내용도 모른 채 연평도 앞바다로 출항한다. 평화로웠다면 저녁 메뉴는 얼큰한 닭볶음탕이었고 여느 청년들처럼 한국과 터키의 월드컵 3~4위전을 시청하면서 "대~한민국"을 외쳤을 것이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의 아들들을 다시 불러냈다. 실화와 허구의 균형 감각이 좋아 공감의 표면적이 넓다. 영웅 이순신을 그린 영화 '명량'에 비하면 현실적 거리감도 훨씬 가깝다. 지금 이곳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돈이 부족해 촬영이 여러 번 중단되며 표류했던 '연평해전'은 국민 성금으로 목적지에 닿았다. 순제작비 60억원 중 20억원이 크라우드 펀딩과 후원금 등으로 모였고 엔딩크레디트에 담긴 이름이 7000여명에 이른다. 영화 본편(120분)이 끝나고 11분 5초간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본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후원한 마지막 이의 이름은 '영원히 잊지 않습니다'였다.

☞제2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 오전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벌어진 군사적 충돌이다.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차단기동을 하던 참수리 고속정 357호를 함포로 기습 공격하면서 30분 남짓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정장인 윤영하 대위를 비롯해 조천형 하사, 황도현 하사, 서후원 하사가 당일 전사했고 19명이 부상했다. 실종됐던 조타장 한상국 하사의 유해는 침몰한 357호에서 그해 8월 수습됐다. 의무병 박동혁 상병은 국군수도병원에서 84일간 치료받다 숨졌다. 북한 경비정은 반파됐고 사상자를 30여명 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해군의 완승으로 끝난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과 달리 희생이 컸던 제2연평해전을 계기로 교전수칙이 적극적 응전 개념으로 수정됐다. 해군은 연평해전 여섯 용사를 기리기 위해 유도탄 고속함 1~6번함을 진수해 윤영하함·한상국함·조천형함·황도현함·서후원함·박동혁함으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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