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 작곡한 안병원]

1947년 서울 음대 재학 중 작곡… 가사는 아버지 안석주 선생이 써
'구슬비' 등 동요 300여곡 만들어

6·25 후 미국 돌며 기금 모으고 캐나다 이민 가 한인 합창단 지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로 시작하는 노래 '우리의 소원'을 작곡한 안병원(安丙元·89)씨가 5일(현지 시각) 캐나다 토론토 노스요크병원에서 별세했다. 안씨의 아내 노선영씨는 전화 통화에서 "작년에 뇌출혈로 쓰러져 재활 치료를 받았는데 최근 뇌출혈이 재발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서울대 음대 재학 시절인 1947년 '우리의 소원'을 작곡했다. 가사는 안씨의 부친이자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낸 안석주(1901~1950) 선생이 썼다. 작곡 당시 가사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 하지만 1948년 남북에 따로 정부가 수립되면서 '통일'로 바꿨다. '우리의 소원'은 1950년부터 교과서에 실렸고 이후 통일 염원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1998년 4월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에서 안병원·노선영 부부가 학생들과 함께‘우리의 소원’을 부르고 있다. /허영한 기자
1998년 4월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에서 안병원·노선영 부부가 학생들과 함께‘우리의 소원’을 부르고 있다. /허영한 기자

안씨는 한국 동요사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꼽힌다. '우리의 소원' 이외에도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로 시작하는 '구슬비' 등 동요 300여곡을 작곡했다. 미국 민요 '징글벨'의 가사를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라고 번안한 이도 안씨다. 그는 광복 직후 '스승의 은혜'를 작곡한 권길상(올해 3월 별세)씨와 어린이 노래 단체인 '봉선화 동요회'를 만들었다. 또 YMCA 어린이합창단과 서울시연합소년합창단 등을 이끌며 동요 작곡과 보급에 힘썼다.

안씨는 중학생 시절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상영된 '빈 소년합창단' 순회공연 기록영화를 보고 동요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에는 어린이합창단을 이끌고 미국 48개 주를 돌며 200여차례나 공연했다. 전후 폐허가 된 한국을 도와달라는 기금 모금 공연에도 참가했다. 그는 국내 최초로 어린이 노래 음반을 냈고, 이를 통해 불우한 아동들을 도왔다. 안씨는 경기여중·고와 숙명여대 등에서 음악 교사와 강사로 활동하다가 1974년 형제들이 정착해 사는 캐나다로 이민 갔다. 캐나다에서 빵집과 편의점 등을 운영하면서 토론토YMCA와 한인 교회 등에서 합창단을 지휘했다.

그는 2006년 본지 인터뷰에서 "남북이 통일을 이뤄 '우리의 소원'이 흘러간 추억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진정한 바람"이라며 "통일이 되는 그날 판문점에서 남북 어린이 합창단을 지휘하면서 이 곡을 부르고 싶다"고 했었다. 그는 직접 그린 유화(油畵) 작품을 모아 북한 어린이 돕기 전시회도 열었다.

안씨는 광복 70주년인 올해 국내 행사에 수차례 초청받아 귀국하려고 했지만 건강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지난 3월 조선일보 창간 95주년 행사에는 '우리의 소원' 피아노 연주 영상을 보냈다. 아내 노선영씨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통일이 돼야 하는데…. 서울에도 가고, 평양에도 가야 하는데'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며 "말할 기력조차 없을 때에도 먼 곳을 보며 지휘하곤 했다"고 말했다.

장례 미사는 9일 오전 11시(현지 시각) 그가 성가대를 지휘했던 토론토의 성(聖)김대건성당에서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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