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만들고 美공화 거드는 '美·日 對 韓·中' 동북아 판도, 6·25 부른 防衛線 연상시켜
우리 경제와 北核 위협, 중·일 新식민주의 감안할 때… 한·미동맹 강화 외 대안 없다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제2의 '애치슨 라인'이 그어지고 있는가?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미국 프레스클럽 연설에서 아시아 방어선을 알류샨 열도~일본~오키나와를 연결하고 한국과 대만을 제외하는 이른바 '도서(島嶼) 방위선'을 언급했다. 그것이 '애치슨 라인'이었다. 6개월 뒤 북한의 김일성은 미국 방어선 밖에 있는 한국을 침공해 6·25 전쟁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65년이 지난 지금 동아시아의 판도를 다시금 미·일을 한편으로, 한·중을 다른 한편으로 몰아가 동해를 경계선으로 양분(兩分)시키는 '애치슨 망령(亡靈)'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런 놀음의 주인공은 일본의 아베 정권이고 미국의 공화당 주류가 맞장구를 치고 있다. 그 반대편에 중국의 대륙굴기(大陸崛起)가 웃고 있고 한국의 기회주의가 엉거주춤하고 있다. 아베의 복고적 제국주의는 그렇다 치고 일본 총리로서는 최초인 아베의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주도한 공화당 소속 베이너 하원의장과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이 '열렬한 아베 지지'를 자처하며 일본 재평가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 심각하다. 미국의 차기 정권이 민주당 집권 8년에 이어 공화당으로 넘어갈 개연성 때문이다.

65년 전 상황을 보자. 2차 세계대전으로 전비(戰費)를 탕진한 미국의 재정, 대외 개입으로 피곤해진 미국 여론, 한국과 대만을 지킬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 절반은 공산화된 한반도 상황, 이승만의 강경 노선 등이 미국이 한국에서 손을 떼게 만들었다. 지금 미국의 사정이 그때를 닮았다. 군비 축소, 대외 개입 축소, 중국 세력의 G2 부상, 일본의 효용가치 증대, 중국과의 극단적 대치 회피, 한국 내의 좌파 성향과 사드 배치 등에서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양다리 정책 등이 미국을 피곤하게 하고 있다. 또 한국이 자국의 방어에서 자기 부담에는 소극적이며 미국에 편승하려는 자세를 비판하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미국이 일본을 마지노선(線)으로 삼아 한발 뒤로 물러서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이미 논란이 된 사드 문제뿐 아니라 러시아 전승(戰勝) 기념식 참석 문제에서도 박 대통령은 불참의 기운을 확산시키려는 미국 편에 흔쾌히 서지 않고 있다. 일본의 전방위적인 대미 외교와 미국 비위 맞추기 총공세는 한국의 미온적 태도와 대비된다. 미국의 주일 대사가 케네디 전 대통령 딸 캐럴라인이고 주한 대사가 외교 무명(無名)인 리퍼트인 것과 우리의 주미 대사가 외무 차관급이고 주중 대사가 청와대 안보실장을 지낸 장관급인 것은 그 격(格)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 미셸 오바마가 일본만 다녀간 것도 개운치 않다. 대통령의 외교·안보 라인에서도 미국을 알고 한·미 동맹과 대미 외교의 중요성을 대변할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우리 쪽에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대미 정책이 어떤 방향에서 어떤 강도로 진행되는지 확신감이 없다. 박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거론해왔지만 솔직히 그의 진정성을 실감한 적은 없다. 주변국 사정과 국내의 다양한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박 대통령은 스스로 친미적이라거나 강한 대미 의존도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 같다. 미국이 그것을 감지하지 못할 리 없다. 웬디 셔먼 미 국무차관이 지난 2월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敵)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그것은 전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고 언급한 것은 일본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받으려는 한·중을 겨냥한 것이다.

사실상 제2의 애치슨 라인이 형성된 정황에서 한국의 안보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문제는 그러한 상황이 불러올 오판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한이 6·25 때처럼 전면적 무력 도발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해도 한국을 간단없이 전방위적으로 괴롭히는 시도를 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북이 핵을 사용하는 경우다. 중국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는 더욱 중요한 변수다. 일본은 지금보다 더 노골적으로 반한(反韓)으로 치달을 것이다. 또 한국의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을 언제까지나 맹목적으로 추종하자는 것은 아니다. 한·미 동맹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국민도 한·미 관계가 언제까지 같은 비중과 농도로 유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가 취약하면 위험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북한이라는 호전적 집단이 도사리고 있는 데다 긴 역사에서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줬을 뿐 아니라 영토적 야욕을 버리지 않았던 중국과 일본이 여전히 그 패권주의적·신식민주의적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을 결정하고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 대통령의 책임이고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들의 의무이다. 지금 박 대통령은 한반도 안(內)에 남과 북으로 선(線)이 그어져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밖(外) 동해에서 다시금 동(東)과 서(西)로 선이 그어지는 가상의 상황을 과연 어떤 책임 의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박 대통령은 한(恨)을 남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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