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미사일에 무방비인데도 小國 의식 길들어 안보 무관심
기회주의와 黨派 싸움 넘쳐나 스스로를 지키려 들지 않으니 중국이 오만한 태도 보이는 것
生死 걸린 문제 왜 남 의식하나

 

1942년 나치 독일의 육군 군수부는 핵 개발을 포기한다. 우라늄탄을 제조할 동위원소 분리 시설과 플루토늄탄을 위한 중수로를 건설하기에 제3 제국의 여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 1938년 핵분열 현상을 발견한 이래 축적된 나치 핵 기술은 이로써 수면 아래 묻힌다. 이 결정은 세계사를 바꾼다. 나치 핵 개발에 자극받은 미국이 맨해튼 계획으로 최초 핵무기를 실험한 게 1945년 7월 일이었다. 나치의 동맹국 일본은 한반도를 인질 삼아 '옥쇄(玉碎)'할 계획이었지만 1945년 8월 6일과 9일 우라늄탄과 플루토늄탄이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강타해 수십만 명이 죽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벼락처럼 찾아온 8월 15일의 한반도 해방이 그 결과다.

전 유럽을 전쟁의 불구덩이로 밀어 넣은 히틀러가 핵 개발을 포기한 건 세계사의 천행(天幸)이었다. 연합군 15만명을 동원해 2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바꾼 1944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히틀러의 핵 앞에서는 무력화되었을 것이다. 최초의 탄도미사일인 나치의 V2 미사일 수천 발이 런던을 불바다로 만들던 당시 핵까지 가세했더라면 영국은 더 이상 견디지 못했을 터이다. 미국이 주춤하는 가운데 유럽 대륙 전체가 히틀러에게 장악됐을 것이다.

'핵을 가진 히틀러'는 유럽을 파괴하고도 남았겠지만 핵 참화(慘禍)는 유럽을 비켜 갔다. 우연한 행운이었다. 하지만 21세기 한반도에서 그런 행운은 기대하기 어렵거니와 나라를 지키는 데 요행수를 바라는 건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히틀러는 핵이 없었지만 북한은 플루토늄탄에 이어 우라늄 농축 능력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 체계도 완결 단계다. 3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이어 작년 한 해에만 수백 발에 이르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쏘았다. 이 모든 사실은 한 가지 방향을 가리킨다. 북한 핵미사일의 실전(實戰) 배치가 임박한 것이다.

하지만 공공연히 핵전쟁을 위협하는 북한의 미사일 선제공격을 지금 우리는 막을 길이 없다. 고통스러운 진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북핵과 미사일에 무방비로 노출된 대한민국의 위기의식 부재(不在)다. 권위주의 시대에 남용된 '안보 장사'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국가 안보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타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과 조국을 지키는 절박한 문제에 대해 냉소적이고 비판적이어야 '의식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한국 사회 일각의 풍경은 가히 변태적이다.

북핵에 무관심한 세태의 바탕에는 뿌리 깊은 소국(小國) 의식이 자리한다. 북한의 공격은 대국(大國)인 미국이 막아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북핵도 결국 북한과 미국이 해결할 문제라고 주장하는 지식인 집단도 이런 소국 의식을 재생산한다. 우리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소외시키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는 비주체적 태도다. 한반도 현대사에 미국이 등장하기 이전의 소국 의식이 중국과 맺은 관계에서 전면적으로 만들어졌음은 물론이다. 중원(中原)의 패자(�者) 중국에 대해 2000년 동안 지속된 사대(事大)에는 약소국의 생존책이라는 측면도 있었지만 그 해악이 너무 심각하다.

병적인 소국 의식은 국가 방위의 큰 틀을 남에게 맡기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임진왜란과 6·25전쟁이 대표적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 문제를 남에게 의탁하는 존재는 왜소해지며 비굴해진다. 소국 의식이 각인된 나라에서는 기회주의자가 넘쳐난다.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에 병역을 면탈(免脫)받은 사람이 그리도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인 국가의 생사(生死)를 남에게 맡겨버린 지도층은 작은 이해관계를 두고 아귀처럼 싸운다. 지극히 소모적이고 자폐적이던 조선 왕조의 당파 싸움이 현대 한국에서 반복되는 까닭이다.

스스로를 지킬 줄 모르는 존재를 남이 존중할 리 만무하다. 16일 방한한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의 한국 배치를 직설적으로 반대한 것은 오만한 언행이지만 우리의 소국 의식이 부추긴 측면도 있다. 그동안 미봉책으로 일관한 한국 정부가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을 통해 미국이 사드 배치를 요청해 올 경우 "우리 주도로 판단하고 결정할 계획"이라고 한 것은 잘한 일이며, 사드 문제의 정답이다. 북핵과 미사일은 미국과 중국엔 전략 게임 대상이지만 한국에는 생사 문제다. 히틀러 못지않은 김정은의 협박에서 나라를 지키는 문제는 중국이나 미국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사드를 배치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우리가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마땅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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