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고발해온 탈북자 신동혁씨가 증언의 일부 오류를 인정하면서 국내외 북한 인권운동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한은 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권 운동은 탈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진행돼 왔다. 신씨가 진술을 번복하면서 그 신뢰성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일로 북한 지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세우는 일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신씨를 ‘인간쓰레기’ 등으로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웹사이트를 통해 “자료라는 것이 모두 허위였음이 명백해진 이상 그에 기초해 조작된 그 무슨 북 인권 관련 문서들 역시 전면백지화, 무효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사무소 설치 등 모든 인권 모략소동 역시 중지돼야 한다”고도 했다. 이번 일이 북한 인권운동에 찬물을 끼얹게 될까.
 

탈북자 신동혁(왼쪽)씨와 그의 수기를 펴낸 블레인 하든./ 조선일보 DB
탈북자 신동혁(왼쪽)씨와 그의 수기를 펴낸 블레인 하든./ 조선일보 DB

 신동혁씨는 활동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번 일이 북한 인권운동의 대세(大勢)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신씨는 수용소 생활과 탈출한 경험 자체를 부인한 것이 아니라, 과거 경험한 일들이 벌어진 장소와 시점 등에 일부 오류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북한 인권의 실상에 대한 탈북자들의 축적된 증언 전체를 무력화할 만큼 결정적인 오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 인권단체 북한인권위원회(HRNK) 그렉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아우슈비츠, 다하우, 비르케나우(모두 나치의 유대인 강제수용소 이름)가 무슨 차이가 있는가?”라며 “이 젊은이가 비참하게 고문당했다는 핵심은 여전히 사실”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해 유엔이 채택한 북한 인권결의안도 취소하라고 요구하자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장은 “신동혁씨가 오류를 인정한 것은 북한 인권조사 보고서의 결론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며 “신씨는 위원회에 증언한 300여명의 증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신씨의 수기를 펴낸 전(前) 워싱턴포스트 기자 블레인 하든도 “신씨의 등에 있는 화상 흉터나 다리의 상처를 보면 그가 실제로 고문을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신씨는 여전히 그의 경험이 모두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다만 (책과는) 다른 장소·시점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민주화위원회는 “(신씨가) 일부 거짓을 인정한 것은 북한 정권의 간악한 만행에 대한 진실마저 거짓으로 오해받을 것을 우려한 양심 고백”이라며 “분명한 것은 북한의 수용소, 교화소에서 자행되는 반인륜적 인권유린 행위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라는 성명서를 냈다.

신씨는 수기 ‘14호 수용소 탈출’에서 자신이 평양 북쪽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나 2005년 탈출했다고 밝혔다. 어머니와 형의 탈출 계획을 수용소 당국에 밀고했으며, 함께 탈출하다 전기 철조망에 걸린 다른 수감자의 시신을 딛고 수용소 울타리를 넘을 수 있었다고 진술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6살 때 어머니, 형과 함께 14호 수용소에서 대동강 근처 18호 수용소로 옮겨졌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또 1999년과 2001년에도 탈출 시도를 했으며, 2001년에는 중국까지 가는 데 성공했지만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됐다고 했다. 다시 북한에 와서 18호 수용소로 보내졌다가 곧 14호 수용소로 옮겨져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신씨의 책에는 14호 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한 것이 13살 때였다고 나오지만 2001년 신씨의 나이는 20세다. 하든에 따르면 신씨는 “나의 경험을 책으로 펴내기로 했지만 과거의 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스스로 타협(compromise)을 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떠올리지 않기 위해 세부적인 부분을 정확히 얘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개천(14호), 요덕(15호), 화성(16호), 북창(18호), 회령(22호), 청진(25호) 등 6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통일연구원의 2014년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국경과 가까운 회령 22호 수용소가 2012년 폐쇄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의 수용소는 한 번 수용되면 다시 나갈 수 없는 ‘완전통제구역’과 사회 복귀가 가능한 ‘혁명화구역’으로 나뉜다. 종전 6개의 수용소 중 요덕의 15호만이 유일하게 혁명화구역과 완전통제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나머지는 완전통제구역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최근의 증언에 따르면 18호나 25호에서도 일부 사회복귀가 가능한 사례들이 있었다고 한다.

신씨는 과거에도 ‘가짜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지난해 북한이 신씨의 아버지를 선전용 TV방송에 출연시켜 신씨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하는 내용을 내보낸 뒤 일부 탈북자 등이 신씨의 증언에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신씨는 진술을 번복한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를 믿고 지지해준 이들에게 매우 미안하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북한 수용소 실태를 고발하는 활동을 계속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내가 아니어도 여러분들은 계속해서 싸울 수 있다”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