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출신 최초로 외과 전문의 된 고윤송씨]

北 의학 용어는 라틴어인데 한국선 영어 써 애먹었죠
13년前 탈북해 中서 공장일… 컨테이너에 숨어 한국으로
北선 치질 수술조차 어려워… 의료 지원하면 큰도움 될 것

탈북자 출신 중 최초로 외과 전문의가 된 고윤송씨가 21일 고려대 병원에서 계획을 얘기하고 있다. 지난 2007년 한국에 온 고씨는 "요즘 간이식 수술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다. 고씨 앞에 모형 간이 놓여 있다. /이태경 기자
탈북자 출신 중 최초로 외과 전문의가 된 고윤송씨가 21일 고려대 병원에서 계획을 얘기하고 있다. 지난 2007년 한국에 온 고씨는 "요즘 간이식 수술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다. 고씨 앞에 모형 간이 놓여 있다. /이태경 기자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간이식 수술을 할 것입니다. 북한에 간경화 환자는 많은데 그런 고난도 수술을 할 외과 의사가 없으니까요."

탈북자 출신 최초로 외과 전문의가 된 고윤송(41)씨의 말에는 다소 딱딱한 이북 사투리가 남아 있었다. 그는 4년간 고려대병원에서 외과 레지던트 수련을 끝내고, 지난 20일 외과 전문의 시험에 합격했다. 북한 의사가 탈북해 국내 의사 면허를 딴 경우는 10명 정도 있지만, 외과 전문의가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북에서는 의학을 라틴어로 공부했는데, 여기서는 영어를 써서 의료진과 대화하는 데 크게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고씨가 한국 외과 전문의가 되기까지에는 영화 같은 스토리가 있다. 그는 평안남도 평성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됐다. 동네 마을을 돌며 결핵 환자를 돌보는 생활을 5년 했다. 어느 날 바깥세상이 간절히 궁금해졌다.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한 때가 28세였다. 그는 "젊은 사람이 뭘 알았겠느냐"며 "사춘기가 늦게 왔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불법 체류 신분으로 막노동도 하고, 온갖 잡일을 했다. 그러다 한국인이 세운 마네킹 생산 공장에 들어가면서 인생행로가 바뀐다. 2007년 그는 한국행을 결심하고, 평택으로 가는 마네킹 제품 틈에 끼어 컨테이너 안에 숨었다. 컨테이너를 실은 배가 다롄(大連)을 떠나 평택항에 도착하자 그는 자수했다.
"북한 의사 자격증을 써먹을 수 있을지 알아보니, 의대 교수와 면접시험을 통과하면 된다고 해서 응시했죠."

그렇게 해서 일단 국내 의사면허 시험을 볼 자격은 얻었다. 하지만 공부가 막막했다. 그는 집 근처 고려대 의대 도서관을 무작정 찾아갔다. "의학 교과서를 대출받고 싶다"고 하자 학생증이 없다며 거절당했다. 그 과정에서 예방의학과 이원진 교수를 만나 '북한 의료 실태'에 대해 의대생들에게 특강을 하게 됐고, 도서관 출입증도 받았다.

이후 2년간을 도서관에 파묻혀 살았다. 학교 측 배려로 임상 실습도 의대생과 같이 받아 2010년 마침내 의사가 됐다.

손재주가 좋은 그는 혈관이 거의 안 보이는 환자에게도 '라인'을 잘 잡는 의사로 통하면서, 주사를 못 놓아 쩔쩔매는 동료 의사들의 SOS를 받는 의사로 성장했다.

외과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그는 "북한에서는 외과라면 최고로 치는데 여기서는 다들 기피하는 거예요.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외과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려대 안산병원 송태진 교수의 간이식 팀에서 30여건 수술을 도우면서, 간이식의 매력에 푹 빠졌다. 외과 전문의를 따면 고액 연봉을 주겠다는 개인 병원의 제안을 뿌리치고, 그는 오는 2월부터 전문의 자격으로 간이식 수술팀으로 들어간다. "하늘 문턱까지 갔던 간경화 말기 환자도 간이식을 받으면 며칠 만에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웃어요. 그 맛에 하는 거죠."

고대안산병원은 국내 2만8000여 탈북자의 절반이 사는 안산시가 북한 질병 연구에 적임지라는 생각에 올해 통일한국보건의학연구소를 차린다. 고씨는 여기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그는 "북한에서는 탈장이나 치질 등 가벼운 질병도 수술을 받지 못하고 노동력을 잃는다"며 "한국에서 북한에 수술 체계를 지원해주면 북한 주민이 엄청나게 환호할 것"이라고 했다.

고씨는 북한 의학 교육 선진화에 관심을 갖고 고려대 대학원에 지원해 합격했다. 하지만 레지던트 월급에 가정을 꾸리느라 입학금과 등록금 10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입학 취소가 될 처지가 됐다. 그는 "의학 교육에 관여하려면 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아쉽다"며 "북한 의사들은 열정이 대단해 제대로 된 교과서를 주고 체계적인 교육만 시키면 통일 후 남북한 의료 격차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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