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본격적으로 대북 제재와 압박의 칼을 뽑아 들 기세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 시각) 지난해 말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 소니 픽처스를 해킹한 북한에 대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정의의 심판을 느끼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같은 날 열린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 정부와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대북(對北) 성토를 쏟아냈다. 성 김 국무부 대북 정책 특별대표는 "미국은 북한이 스스로 불법 무기와 도발, 인권 탄압을 포기할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며 "북이 불법행위의 대가를 치르도록 모든 수단을 다 쓰겠다"고 말했다.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북한 정권을 지원하는 아시아와 세계 금융기관들도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의회(CFR) 회장은 얼마 전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문에서 "북한의 위협을 끝내는 유일한 방안은 북한이 빨리 망하게 해서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CFR은 미국 외교·안보 분야에서 권위 있는 단체 중 하나다.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을 지낸 하스 회장이 이런 주장을 펴는 것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미국 조야(朝野)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북 강경 기조가 결코 일시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지난해부터 의욕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대북 정책에서 한·미 엇박자로 가는 듯한 모양새다. 국내 일각에선 미국의 대북 제재로 남북 대화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식의 근거 없는 억측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북핵 해결은 한·미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공유하는 대북 정책의 주요 목표다. 우리가 비핵화를 남북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삼지는 않더라도 남북 대화의 목표 중 하나가 북핵 해결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부분에서 한·미 간에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해킹을 비롯한 북의 도발을 막는 것 역시 한·미 공조의 핵심 과제이다.

남북 대화가 열려 북이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요구할 때의 상황에 대해서는 사전에 한·미 간 솔직한 대화를 통한 지혜로운 조율(調律)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두 사안과 관련, 북의 도발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있다. 북이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 해도 현금을 직접 북에 주게 되는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국제사회의 공감과 동의가 앞서야 한다. 필요할 때만 국제 공조를 외치다 갑자기 등을 돌리는 것은 한국마저 북한처럼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길이다. 남북 대화를 추진하면서도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것은 우리가 짊어질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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