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리방송(VOA)은 2014년 한 해 동안 북한 장마당에서 인기를 끈 상품으로 알루미늄 창틀과 통유리, 도둑을 방지하는 경보기, 열악한 전력 때문에 전통적으로 인기가 많은 전기 배터리, 생수, 자동차부속품 등이라고 분석했다.

아무리 폐쇄되고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이지만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주민들의 욕구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고 그에 따라 수요도 변한다. 이제는 북한 장마당에도 생활의 편리함과 인간의 욕구 실현에 필요한 상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역시 시장경제는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한에서는 아파트 창틀이나 통유리, 생수 같은 것이 너무 보편화되어서 그것 때문에 신분의 차이가 갈리지 않지만 북한에서는 이런 사소한 것들이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 때문에 인기 상품 차트에 오르는 것이다. 전기 배터리와 자동차부속품이 인기를 끌고 있고, 특히 도둑을 방지하는 경보기는 장사를 통해 부를 축적한 중산층 이상의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상품이라고 한다.

배급제 시절에는 누구나 비슷한 살림살이 수준이어서 남의 집을 턴다고 해봐야 김장김치나 식량, 장작이나 석탄, 그리고 옷가지나 신발 등 생필품 위주였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 능력껏 장사를 해서 살아가야 하는 시절이기 때문에 훔칠 수 있는 물건의 종류가 예전에 비해 가치도 높아지고 상당히 다양해졌다.

게다가 북한은 공식적으로 장사나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도둑이 들어 현금을 훔쳐간다든가, 귀중품을 훔쳐간다고 해도 어디에다 신고할 수도 없다. 오히려 법을 믿고 신고하면 비사회주의적인 행동이나 탐오낭비, 횡령 등 불법 활동 혐의로 체포돼 재산을 몰수당하고 감옥에 갈수 있기 때문에 도둑을 맞고도 숨길 수밖에 없다. 심지어 도둑들이 대담하게 편지까지 써놓고 당당하게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실례는 부정부패가 심한 간부들 집에서 종종 일어나는데 군당 책임비서나 시나 도 안전부 부장들의 집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도둑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도둑질이라고 하지 않고 ‘생활조절위원회’라고 정당화하기도 한다. 함흥시에서는 어느 구역 안전부장 집을 들이 친 도둑들이 생각보다 많은 수확을 얻었다고 한다. 그 안전부장은 불법 장사와 밀수를 하는 큰손들을 봐주는 대가로 많은 뇌물과 뒷돈(달러)을 챙겼고 그것을 장롱에 숨겨두었다. 도둑들은 안전부장 집을 털고 가면서 “나라가 고난의 행군으로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혼자서 잘 먹고 잘살겠다고 많은 식량과 돈을 모은 안전부장 xxx를 인민의 이름으로 심판함. 생활조절위원회”라고 써놓고 도망갔다고 한다.

그는 구역 안전부장으로서 자신이 직접 수사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리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 도둑을 잡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도둑들이 자신의 비리를 세상에 폭로할까봐 전전긍긍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소문으로 퍼져 나중에는 북한 전역에 ‘생활조절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도둑 무리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북한주민들에게는 안전원(경찰)들의 단속도 무섭지만 도둑들의 습격도 만만치 않는 불안요소가 되었다.
안전부에 신고해봐야 도둑을 잡아주지 않기 때문에 신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잃어버린 놈이 죄가 더 많다”는 식으로 넘어가곤 한다. 그러니 당연히 도둑을 방지하는 경보기가 단연 인기 상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가 국가답게 법질서를 세워 주민들의 사유재산과 인권을 보호해주어야 주민들이 맘 놓고 발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고 착한 백성들의 주머니 터는 일에만 열을 올리니 북한주민들이 스스로 찾아낸 궁여지책이 바로 도둑방지 경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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