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전격 對北제재… 한반도에 미칠 영향]

한국엔 1주일전 통보해놓고 김정은 南北대화 언급 다음날 오바마 휴가지에서 전격 서명
정부 다소 곤혹스러운 분위기 "적절한 대응 조치로 평가" 13시간 만에 공식 논평 내
北 "美의 제재는 구태의연… 선군의 보검 더 날카롭게 해"

 
소니픽처스 해킹과 관련한 미국의 2일(현지 시각) 대북 제재 조치는 상당히 미묘한 시점에 나왔다. 우리 통일준비위원회가 지난달 29일 남북 대화를 제의하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1일 '최고위급 회담'을 언급한 직후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휴가지인 하와이에서 제재 행정명령에 사인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모두 "이번 조치는 '사이버 공격'과 관련한 것으로, 남북 대화 움직임과는 별개"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이 추가 제재 조치를 언급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대응 도발로 맞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최근 조성된 남북 대화 분위기에 어떤 식으로든 악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북 "남북 대화에 찬물" 반발

4일 외교부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1주일 전 우리 정부에 "1월 초 대북 제재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통준위 발표나 북한 신년사 이전에 결정된 사항으로, 미국이 최근 남북 대화 분위기에 '경고'를 보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외교부 당국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미 해킹과 관련한 '비례적 대응'을 천명한 상황에서 미 정부도 빨리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으로 복귀하기도 전에 휴가지에서 서명할 정도로 강수를 둔 것에 대해 우리 정부는 다소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외교부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미국이 최근 남북 대화 논의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처럼 외부에 비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발표 후 외교부가 "적절한 대응 조치로 평가한다"는 공식 논평을 내기까지 약 13시간이 걸린 것도 이런 기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미국의 조치는 민족 화해의 기운에 찬물을 끼얹고 북과 남의 대화에 쐐기를 박을 수 있다"고 했다.

◇정부, 남북 대화 속도 조절할 듯

우리 정부는 남북 대화는 그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미국의 조치에도 원칙대로 남북 대화를 추진하겠다. 미·북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영향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다른 정부 당국자도 "핵 문제나 인권은 그것대로 처리하면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는 그대로 추진한다. 대화와 제재는 항상 병행해 왔다"고 했다.

북한 노동신문 등도 과거와 달리 대남 비난을 중단한 채 '김정은의 신년사가 남쪽에서 큰 반향을 얻고 있다'며 남북 관계 개선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 통하고 남한을 배격한다)'이 아니라 '통남봉미' 전략을 펴고 있다는 얘기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미국과의 관계가 안 좋을 때 남한에 접근하는 것은 북한의 전형적인 전략"이라며 "앞으로 북한이 미국 보란 듯이 남한에 더 손을 내밀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핵·인권·사이버공격 등을 놓고 대북 제재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흐름과 남북 대화 속도를 어떻게 조율하느냐다. 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미국에 강력한 대북 압박 공조를 요구해온 것은 우리 정부"라며 "북한과 대화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경제제재 해제를 논의해야 할 경우, 미국과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칫하면 북한의 '한·미 동맹 틈 벌리기'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 보수층과 미국 내 여론을 감안하면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앞서 좀 더 시간을 벌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정부가 미국의 추가 조치와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을 지켜보며 남북 대화의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국은 '테러 지원국 재지정' '상원의 대북 제재 법안' 등 강력한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북한이 이에 맞서 핵실험 등 도발 카드를 꺼내면 기껏 조성된 남북 대화 분위기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이런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도록 우리 정부가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적절한 중재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