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석 선임 기자
최보석 선임 기자
獨 통일 상징 출발 자전거원정대 1만여㎞를 달려 압록강변에 섰다
燕巖이 바깥세상 느꼈던 그곳… 남북 길 뚫리면 利用厚生일 것을
江 못 건너고 주위만 돈 銀輪이 未堂의 詩를 합창하는 듯했다.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원정대'에 내가 합류한 지점은 몽골이었다. 지원 차량에 앉아 대원들의 자전거 뒤를 따라갔다. 중국을 통과해 내려오는 동안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자주 떠올랐다.

234년 전 그가 말 등 위에 얹혀서 갔던 길을 원정대가 답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때 연암은 43세였다. 그는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 축하 사절단에 속해 있었다. 정식 멤버는 아니었다. 바깥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속된 표현으로 '꼽사리'를 낀 것이었다. 그는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요양·심양·광녕·산해관을 거쳐 북경과 열하까지 갔던 자취를 '열하일기(熱河日記)'로 남겨놓았다.

당시 기록을 보면 사절단은 압록강을 넘기 전 의주에서 황제 선물을 최종 점검하느라 열흘을 머물렀다. 이제 출발하려는데 큰비가 내려 강물이 불었다. 날이 개고 나흘이 지나도 물살은 거셌다. 나무와 돌이 함께 굴러 내려왔고, 탁류(濁流)가 하늘과 맞닿았다고 한다. 강을 건너는 데 보름이 걸렸다. 나룻배로 물품과 말, 사절단 300여 명을 실어 날랐다.

압록강을 건너 첫날 노숙했던 곳은 '구련성(九連城)'이었다. 3~5명씩 천막 하나를 쳤고 하급자들은 나뭇가지를 대충 얽어매 잠자리를 만들었다. 솥을 걸어 밥 짓는 연기가 자욱했다. 나물을 볶고 닭을 잡고, 시냇가에서 그물로 잡은 물고기로 국도 끓였다.

우리 원정대는 어제(30일) 이곳을 지나갔다. 먼지가 날리는 변경 마을이었다. 호랑이를 막기 위해 밤에 횃불을 환하게 밝히고, 병졸이 나팔을 불면 사절단이 이에 맞춰 일제히 고함치던 그때의 장면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마을 잡화점 앞 비석에 쓰인 '구련성 고성지(古城址)'라는 문구로 그 지점을 알아봤을 뿐이다.

당대 최고 지성인 연암이 중국에 들어섰으니 '큰 이치'를 논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가 감탄을 연발했던 대상은 기껏 벽돌, 우물, 기와, 수레 같은 것이었다. 천문지리를 꿰뚫는 사상이나 체면, 명분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었다.

그는 변경 마을의 우물을 보고는 대단한 발견인 양 꼼꼼하게 기록했다. '우물의 위는 넓은데 돌을 다듬어서 덮었다. 양쪽에 구멍을 뚫어 겨우 두레박만 드나들 수 있다. 이는 사람이 빠지는 것과 먼지가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또 물의 본성은 차기 때문에 태양을 가려 활수(活水)를 기르는 것이다.'

중국의 기와 이는 법도 그에게는 절실했던 모양이다. '정말 본받을 만한 것이 많다. 한 장은 엎고 한 장은 젖혀 암수를 서로 맞추었다. 틈 사이는 회반죽으로 붙여 때운다. 이러니 쥐나 새가 뚫거나 위가 무겁고 아래가 허한 폐단이 없다. 우리나라는 기와를 일 때 지붕에 진흙을 잔뜩 올리고 보니 위가 무겁고….'

언어를 다루는 사대부 집안 출신치고는 독특하다. 그는 '실용(實用)'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크고 추상적인 담론보다 실제적인 용도가 때로는 사람들의 삶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우물 뚜껑을 덮고, 기와를 암수에 맞춰 이고, 벽돌을 줄 맞춰 쌓는 것이 곧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본 것이다. 이런 실용으로 사람들 살림이 넉넉해지고, 살림이 넉넉해지면 그 사람들은 바른 길[正德]을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 연암이 바깥세상을 보고자 건넜던 압록강, 우리 원정대도 마침내 그 강 앞에 섰다. '통일'의 상징인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출발해 1만3000㎞ 이상 달려왔다. 79일째다. 압록강을 바로 건너면 사흘 안에 서울에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름을 더 지체하고,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항까지 가서 동해로 돌아와야 한다.

이제 한반도의 남북은 허세나 장황한 담론은 그만해도 된다. 사람의 삶에 밀착된 실용적 대화를 해야 할 때가 됐다. 가령 가까운 길을 두고 이렇게 빙 돌아가야 하는 통행의 불합리부터 우선 풀어야 한다. 대북 사업가들은 트럭에 물자를 싣고 개성으로 올라가면 몇 시간이면 될 것을, 중국을 거쳐 거꾸로 북한으로 들어간다.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도 길이 막혀 중국에서 물품을 구입해 넣어주고 있다. 돈과 시간, 자원 낭비가 얼마나 막대한가. 남북의 길만 연결돼도 한반도 전체 사람들에게 '이용후생(利用厚生)'이 되고,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다.

원정대는 압록강을 건너지 못했다. 대신 강가에서 중국 단둥(丹東)의 시민들과 어울려 한바탕 자전거 행진을 벌였다. 햇빛을 반사한 자전거의 은륜(銀輪)은 일제히 서정주의 시구절을 합창하는 것 같았다.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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