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훈 스포츠 부장
조정훈 스포츠 부장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자전거 애호가였다. 그는 아들에게 쓴 편지에 '인생은 자전거 타는 것과 같다. 중심을 잡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적었다. '톰 소여의 모험'을 쓴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자전거를 사라. 살아 있다면 그것 때문에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자전거포 점원이었던 엄복동은 일제(日帝) 강점기에 주요 사이클 대회를 휩쓸며 억눌린 민족의 한(恨)을 풀어줬다.

요즘 한강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마련된 자전거 전용 도로에 가면 수많은 자전거 동호인을 볼 수 있다. 자전거를 친(親)환경 교통수단이나 레저 스포츠의 도구 정도가 아닌 자신의 분신(分身)처럼 여기는 이도 적지 않다.

지난 8월 13일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시작해 현재 중국을 지나고 있는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 대장정'은 자전거가 만들어낼 수 있는 또 다른 가치를 느끼게 해준 특별한 이벤트다. 30명 가까운 원정단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카자흐스탄, 몽골을 거쳐 중국 베이징에 이르는 구간을 달리는 동안 단장(團長) 역할을 맡아 함께했던 50일간의 여정은 새로운 도전과 경험의 연속이었다.

특히 자전거를 직접 타는 라이딩 대원 7명이 보여준 배려와 희생정신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바이칼호(湖) 인근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갈 때 52세 외과의사 박영석 대원이 힘들어하자 젊은 대원 3명이 그의 등을 밀어주기 시작했다. 자기 몸 건사하기도 버거워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도 "조금만 더" "힘내세요"라고 외치는 모습에 코끝이 찡해졌다. 유일한 여성 대원인 김영미(34) 대원은 허리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선두에 서서 시베리아의 강풍(强風)을 헤치며 대열을 이끌었다. 장난기 많은 MTB 국가대표 출신 안영민(25) 대원은 영하 9도의 갑작스러운 추위에 다른 대원의 브레이크가 고장 나자 맨손으로 고쳐주었다. 자라온 환경도, 성격도 제각각인 대원들은 '또 다른 가족'이 되어 서로를 받쳐주고 있었다. 혹독한 여건이지만 통일 염원을 안고 두 바퀴를 굴려 유라시아를 가로지른다는 공동체 의식이 이들에게 알 수 없는 힘을 불어넣고 있는 듯했다.

'뉴라시아 대장정' 행사는 지나는 곳마다 화제가 됐다. 카자흐스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손으로 그린 태극기를 흔들며 반겼다. 함께 자전거를 타러 나온 동호인이 가져온 자전거 중에는 고철(古鐵) 수준도 있었지만 함께 페달을 밟으면서 모두가 스스럼없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몽골 국경에서 만난 간바트씨는 "처음에 '원코리아 원정대'라는 말을 듣고 한국과 북한 사람이 함께 자전거를 타는 줄 알았다"며 "남북이 통일된 뒤에 북한 사람도 포함된 원코리아 팀을 만들어 다시 한번 오라"고 당부했다. 수많은 현지 언론이 원정대의 방문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뉴라시아 원정대는 북한을 관통해 서울로 오겠다는 희망을 갖고 베를린을 출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압록강 건너에서 애를 태우고 있다. 새로운 진전이 없으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동해로 들어오는 코스를 택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두 바퀴의 힘은 위대하다. 평화와 소통의 염원을 담은 자전거 대열이 북녘땅을 누비고 판문점을 지나 서울에 입성하는 꿈을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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