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군 당국이 15일 판문점에서 장성급 회담을 가졌다. 남북 간 장성급 회담이 열린 것은 2007년 이후 7년 만이다. 이번 군사회담은 지난 7일 북 경비정의 서해 NLL(북방한계선) 침범으로 남북 함정이 사격을 주고받는 일이 벌어진 직후 북측이 황병서 총정치국장 명의로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군 당국 간 긴급 접촉을 요구하면서 이뤄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 군사회담은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났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다음번 회담 날짜도 잡지 못했다. 북측은 자신들이 자의로 설정한 서해 경비경계선 안으로 남측 함정의 진입 금지를 요구했고,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중단, 남측 언론을 포함한 모든 기관의 일체의 비방 및 중상 중지 등을 주장했다고 한다. 북측의 요구는 우리 측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다. 북이 일방적으로 NLL보다 더 남쪽에 그어놓은 경계선을 지키라는 것은 우리에게 해양(海洋) 주권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억지다. 북측은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무슨 중대한 도발인 양 거듭 문제 삼고 있지만 북한도 최근까지 군부대 등을 동원해 남측으로 선전 전단(삐라)을 뿌려 왔다.

이날 회담에 나온 북측 수석대표는 김영철 국방위 정찰총국장이다. 김은 우리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폭침(爆沈) 도발의 주역이다. 우리 입장에서 그는 전범(戰犯)이다. 그런 인물까지 상대해야 하는 것이 남북 회담의 어려움이고 현실이다.

정부는 이날 북측에 오는 30일 2차 남북 고위급 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 고위급 접촉에서 북측이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북의 최우선 관심사는 자신들이 '최고 존엄(尊嚴)'이라고 떠받드는 '김일성-정일-정은' 3대(代)에 대한 비판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북은 올해 초 대남(對南) '중대 제안'을 주장할 때부터 대북 전단 문제를 빼놓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이 김씨 왕조의 실체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전단 문제를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 노동신문도 이날 똑같은 주장을 폈다.

이런 북한과 마주 앉아 대화하고 합의를 일궈내는 것은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북한과의 대화를 피할 이유도 없다. 긴 호흡으로 남북 대화를 이어 갈 원칙과 분명한 방향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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