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식 건국대 초빙교수·독일 문제 전문가
유재식 건국대 초빙교수·독일 문제 전문가

지난 3일은 독일 통일 24주년이었다. 1990년 10월 2일 밤 베를린 구제국의회 앞 광장에서 거행된 통일 기념식을 현장 취재했던 필자에겐 24년 전 일이 생생하다.

독일 통일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Ostpolitik)은 인적·물적 교류 증대로 이어져 통일의 기초가 됐다. 좌파의 동방정책을 계승한 헬무트 콜 같은 비전 있는 지도자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고, 미국의 지원도 한몫했다. 경제 지원을 무기로 소련 고르바초프를 끈질기게 설득한 겐셔 외무장관의 역할도 컸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동력은 동독에 대한 서독의 인권 정책이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서독은 분단 직후부터 끊임없이 동독 인권 상황에 압박을 가했다. 동독 정치범을 돈 주고 사온 반체제 인사 석방 사업인 프라이카우프(Freikauf)건, 단순한 차관 지원이건, 모두 인권 문제와 연계해 추진했다. 이 같은 서독의 노력으로 동독 인권 상황이 점차 개선됐고, 결국 동독 주민 스스로 민주화와 통일을 결정했다.

브란트는 동독 인권 상황을 가장 걱정했던 지도자였다. '접근에 의한 변화'로 요약되는 동방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동독 인권 향상이었다. 잘츠기터에 중앙문서기록보관소를 설립해 동독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하게 한 것도 브란트다. 베를린 장벽을 넘던 주민을 사살한 동독 군인들을 통일 후 기소한 근거가 잘츠기터에 보관돼 있던 4만3000여건의 기록이었다. 통일 전 동독 관리들도 잘츠기터에 자기 이름이 올라가는 것을 걱정했을 정도여서, 인권침해 예방 효과가 컸다.

박근혜 대통령 유엔 연설을 계기로 북한 인권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도 잘츠기터 같은 기구를 만들어 북한 인권침해 사례를 철저히 기록해, 독일처럼 수십년 전 범법 행위를 단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를 조준 사격하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을 북한군 병사를 단죄하고 만행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몇 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북한인권법도 이를 위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

북한 인권에 무관심한 사람은 통일을 논할 자격이 없다. 북한을 자극한다며 세계 최악인 북한 인권에 눈감는 이들이야말로 분단 고착에서 이득을 보려는 반통일 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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