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 정책 총책인 김양건 노동당 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17일 방북한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등 야권 인사들을 만나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 11일 정부의 남북 고위급 접촉 제의는 무시한 채 북한에 온정적인 인사들을 불러들여 남남(南南) 갈등을 유도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김양건은 이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맞아 북측이 준비한 조화(弔花)를 받기 위해 개성공단을 방문한 박 의원 등과 만나 "남쪽에서 하는 소리가 반가운 게 없다" "군사훈련(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도 왜 하필이면 2차 (고위급) 접촉을 제안하면서 하느냐. 정세를 악화시키면서 어떻게 풀자고 하느냐"고 말했다고 박 의원이 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맞아 북측이 준비한 조화(弔花)를 받기 위해 17일 방북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왼쪽) 의원과 임동원(오른쪽) 전 통일부 장관이 마중 나온 김양건(가운데) 노동당 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과 함께 개성공단 북측 총국사무소에서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날 개성을 방문한 야권 인사들이 북에서 받아온 김정은 노동당 제1 비서 명의의 조화. /사진공동취재단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맞아 북측이 준비한 조화(弔花)를 받기 위해 17일 방북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왼쪽) 의원과 임동원(오른쪽) 전 통일부 장관이 마중 나온 김양건(가운데) 노동당 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과 함께 개성공단 북측 총국사무소에서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날 개성을 방문한 야권 인사들이 북에서 받아온 김정은 노동당 제1 비서 명의의 조화. /사진공동취재단
김양건은 또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대해 "핵 문제를 거론하며 어떠한 것을 하자고 하는데 그 내용이 실현될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도 이날 경축사에 대해 "논할 만한 하등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8·15 경축사에서 "이제 북한은 핵을 버리고 국제사회로 나와야 한다"고 했었다.

박 의원은 이날 김양건이 5·24 대북 제재 조치, 금강산 관광, 인천 아시안게임, 개성공단 등 구체적 사안과 관련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면서 "(김양건의) 최종적인 얘기는 전제 조건 없이 실천할 수 있는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통일부 관계자는 "김양건이 말한 '지도자의 결단'이란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등 교류 사업 재개"라며 "결국 김대중 정부 시절의 대북 유화책으로 돌아가라는 압박"이라고 했다.

이날 김양건이 박 의원 등을 만난 것은 '시간 벌기용'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제의한 고위급 접촉 날짜가 북한이 맹비난해온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기간이다 보니 북으로선 넙죽 받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걷어차기도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조화 전달이란 우회로를 통해 UFG 연습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