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과 북은 서로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작은 통로부터 열어가고 이 통로를 통해 서로를 이해해 가면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부터 하나로 융합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민생·환경·문화 등 3개 통로부터 먼저 열자고 북한에 제안했다.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은 올 10월 평창에서 열리는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 북한을 초청했다. 9월 추석을 전후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다시 갖고 내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한 공동 기념 문화사업을 함께 준비하자고도 했다.

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내놓은 대북(對北) 제안은 새로운 내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은 지난 3월 박 대통령이 독일에서 밝힌 드레스덴 선언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북한은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흡수통일론'이라고 반발해 왔다. 북한은 오는 19일 남북 고위급 접촉을 갖자는 우리 측 제안에 대해서도 나흘째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거꾸로 북의 대남 기구인 조평통 성명을 통해 5·24 대북 제재부터 풀어야 남북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5·24 제재는 북의 천안함 도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취해진 조치다. 북한은 아직도 천안함 폭침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기는커녕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대한민국 어느 정부도 선뜻 5·24 제재를 풀어주기는 어렵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을 포함한 작은 교류·협력부터 시작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것은 북한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訪韓)에 맞춰 미사일을 쏴대는가 하면 9월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 선수단 명단을 보내왔다. 오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에 조화(弔花)를 보내겠다며 야당 인사들을 북으로 부르기도 했다. 북한은 이런 식으로 변죽만 계속 울릴 게 아니라 남북 당국 간 고위급 회담에 즉각 응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이날 일본을 향해서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이 되는 내년이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함께 출발하는 원년(元年)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결단을 기대한다"고 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이날 일본 아베 총리는 일제 전범(戰犯)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바쳤고 일부 각료들은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일제 패전일에 맞춰 열린 전몰자 추모식에서도 아시아 국가들에 끼친 가해(加害) 사실과 그에 대한 반성의 뜻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아베 내각과 과연 새로운 한·일 관계의 시작을 도모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아베 내각은 우선 박 대통령이 어렵게 운을 뗀 한·일 관계 개선 취지를 훼손하는 일부터 삼가야 한다. 아베 총리가 진심으로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원한다면 그에 필요한 여건을 만드는 일은 일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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