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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녀응원단이 우리에게 준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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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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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코나스넷 김성만 예비역해군중장(재향군인회 자문위원, 전 해군작전사령관)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응원단 파견을 인내성 있게 대할 것이라며 참가의사를  7월23일 또다시 표명했다. 북한은 350명의 미녀응원단을 파견하겠다는 계획이다. 우리 정부도 기본적으로 응원단을 받아들인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과거 교훈을 참고하여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북측이 보낸 응원단 규모는 2002년 9월 부산 아시안게임 288명, 2003년 8월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 303명, 2005년 9월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124명이다. 탈북자 전언에 의하면 응원단의 1/3이 유부녀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김정은의 부인인 리설주가 2005년 응원단 일원으로 인천을 다녀갔다.

  미녀응원단의 특징?

  탈북여성 1호박사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은 ‘북한 미녀응원단의 실체와 내막’(조선닷컴, 2014.7.23)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북한 미녀응원단은 한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북한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안보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한 대국민 심리전의 일환이다. 미녀응원단은 그야말로 북한의 소수정예 혁명전사들로 구성된다. 전국 각지에서 철저한 심사와 검증을 통해 뽑힌 미녀응원단은 장기간 한국에 파견된다는 점 때문에 합숙훈련을 하면서 해야 할 말과 행동에 대해 철저한 교육을 받는다.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도 실수가 없도록 일대일 감시체제도 운영한다. 이때 자신이 감시할 대상은 알지만 자신에 대한 감시는 누가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자유와 풍요를 만끽하고 체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북한은 미녀응원단의 충성심 고취를 위해 생전에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한 화장품과 생필품, 옷 등을 무상으로 지급한다. 합숙생활 동안에는 파격적인 식사를 제공한다. 그 뿐만 아니라 약간의 달러도 나눠주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미녀응원단에 선발되는 것 자체가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것이나 마찬가지 수준의 행운이다. 그렇다보니 간부들은 자신의 딸이 미녀응원단에 선발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선발 심사원들에게 뇌물이 건네지는 경우도 있다. 한국정부와 국민들은 미녀응원단이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가면 마음의 변화가 있을 것이고 북한변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천진난만한 발상일 뿐이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5년 인천아시아 육상선수권대회에 참가했던 미녀응원단원들은 북한으로 돌아가자마자 엄청난 사상 검증의 시간을 걸쳤고 일부는 말과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하여 정치범으로 수용소에 끌려가기도 하였다. 광고모델로 발탁돼 북한보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조명애가 최근 여러 질병과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북한 내부정보도 있다. 미녀응원단들이 한국의 발전상에 아무리 감동하고 심리적 변화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그러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표현했다가는 귀신도 모르게 죽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우리에게 준 피해?

  북한은 2002년에 만경봉 92호(9,392톤)에 응원단을 태워 부산에 보냈고 응원단 숙소로 활용했다. 부산 다대포항은 선박과 미녀응원단을 구경하기 위해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일부 젊은이들이 미모에 혹하여 부두에 매일아침 장사진을 치면서 “결혼하고 싶다. 역시 남남북녀다”라고 혼이 빠졌다.

 경기장은 물론 숙소까지 찾아가려는 일부 남성들의 도를 넘은 구애공세에 경호당국이 진땀을 빼기도 했다. 베일에 싸인 선내생활도 화제가 됐다. 숙소가 좁아 보조침대를 이용해 잠을 잤다거나 평양 옥류관 냉면재료를 공수해왔다는 말도 전해졌다.

 길이 162m에 이르는 만경봉호 4층엔 식당과 영화관·목욕탕까지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우리 언론은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일부에선 ‘김정일식 미인계(美人計)에 나라가 들썩인다’는 걱정이 나올 정도였다.

 미인계로 한국군 1개 군단 규모가 무력화되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북한은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을 도발하고 우리 고속정(참수리 357정)을 격침했다. 우리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다. 북한이 응원단을 통해 대북비판 여론을 누그러뜨리는데 대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에 편승하여 일부 국민들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하자”, “반미(反美)하면 어때”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변해갔다. 2002년 6월 13일에 발생한 미군장갑차 사건과 연계되어 반미정서(反美情緖)는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후 미녀응원단이 다녀간 2003년과 2005년에는 친북반미정서가 증폭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가 받은 직·간접 피해는 적지 않다. 국방부는 2004년에 북한에 대한 주적개념(主敵槪念)을 삭제했다. 우리 군은 주한미군의 전·평시 한반도방어 10대 필수임무를 2004년 8월~2008년 9월간 모두 인수했다. 우리 정부의 요구로 인해 주한미군은 주둔명분이 약화되었다(주한미군 1만 명이 철수했다).

 2007년 2월 한미국방장관회담에서 2012년 4월에 전시작전통제권을 전환(한미연합군사령부 해체)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우리가 2005년경부터 미국에 부단히 요구했던 일이다. 한미연합사의 해체는 사실상 한미군사동맹의 붕괴를 의미한다(다행스럽게도 이명박 정부는 전환일자를 2015년 12월로 연기했다. 박근혜 정부는 시기를 재검토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2007.10.4, 평양)에서 김정일에게 “우리 남측 국민들에게 여론조사를 해봤는데, 제일 미운나라가 어디냐고 했을 때 그중에 미국이 상당 숫자 나옵니다. 또 동북아시아에서 앞으로 평화를 해롭게 할 국가가 어디냐, 평화를 깰 수 있는 국가가 어디냐 했을 때 미국이 일번으로 나오고 제일 많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지목하고, 그 다음은 일본을 지목하고 다음을 북측을 지목했습니다”라고 말했다(국정원 공개 정상회담 회의록에서 발췌).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2008년 5월부터 1년 여간 이어져 한미동맹이 큰 위기를 맞았다. 한국경제연구원은《촛불시위의 사회적 비용》(조경엽·송원근·정연호·김필헌 저)에서 3조7,513억 원에 달하는 사회적 비용의 손실을 가져왔다고 주장하였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한미동맹 복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아직도 그 상처는 도처에 남아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북한응원단 파견을 저지해야 한다. 우리가 만경봉호 입항과 북한의 체재비(약 20억 원)  지원 등을 거부하면 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만경봉호는 5·24 대북조치에 따라 입항을 허가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차제에 ‘미녀 응원단’을 ‘여성 응원단’으로 변경함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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