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금강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새해맞이 남북공동모임’을 무산시킨 것은 민간차원의 남북대화와 교류에 북한당국이 어떤 목적과 의도로 임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측이 내세운 이유는 『미국과 그의 조종을 받는 남조선 극우 보수세력들의 책동에 의해 통일연대 대표들의 행사 참가가 불허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범민련과 한총련 등이 포함된 ‘통일연대’가 빠진 행사로는 북측이 기대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뜻에 다름아니다.

정부가 이번 행사 참가를 불허한 46명은 ‘관련법규 위반으로 사법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남북교류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현저하게 부적절하다고 판단된’ 경우로, 작년 8·15 평양행사 때 정부와의 약속을 어기고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에 갔던 인사들이 다수 포함됐다.

정부로서는 작년과 같은 형태의 민간교류를 예방하기 위한 불가피한 합법적 조치라고 생각한 것 같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를 북측이 문제삼아 행사를 무산시켜버린 것은 남측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며, 행사 참가자를 자의적으로 선별하겠다는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더구나 북측이 “통일부에도 문제가 있다”면서 “그 죄과를 똑똑히 계산할 것”이라고 언명한 것은 한국정부에 대한 공공연한 협박이자 민간교류의 장래를 위험하게 만드는 처사다.

정부는 북측의 이같은 무례하고 일방적인 자세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 북측의 위협적 언행에 위축돼 다시 원칙과 기준이 흐물흐물해진다면 대화나 교류가 무슨 의미를 가질 것인지를 새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부가 현재의 냉각된 남북관계에서 조그만 대화의 물꼬라도 터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에서 원칙을 허문다면 제2, 제3의 ‘만경대 정신’ 사건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고, 그럴 경우 민간차원의 대화마저 불가능해지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차제에 정부와 민간단체들은 남북 민간접촉의 바람직한 틀을 짜는 데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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