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평양 평천구역에서 23층 아파트가 무너져 내려 수백명이 사망되었다고 이례적인 보도가 있었다. 평양 당국자들이 직접 인민들 앞에 나와 사과도 하고 신문에 기사도 썼다고 하니 하여간 사람은 오래 살고 볼 노릇이다. 평양 평천구역은 내가 출생한 곳이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와 함께 다녔던 곳곳에 대한 추억이 고이 간직된 곳이다. 유명한 평양화력발전소도 이곳에 있다. 그래서 평천구역 아파트 붕괴사고는 더욱더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북한 노동신문은 세월호 참사를 거론하며 남한 정부를 성토하고 민심을 선동하는 글로 도배를 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때도 북한은 남한의 부실공사를 들먹이며 남한정부에 대한 비방 중상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 북한에서 평양 고층아파트가 무너져 내려 수백명의 인명피해가 났다고 하니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북한에서도 그동안 적잖은 대형 사고가 있었다. 1991년 통일거리 아파트 공사장에서 아파트가 무너져 내려 공사에 동원되었던 군인들과 건설노동자 500명이 시체도 없이 사라진 적이 있다. 또 2007년 7월 양강도 혜산시 혜산동에서도 7층 아파트가 붕괴되었고 2013년에도 평성의 한 아파트가 무너져 수십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북한은 시치미를 뚝 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북한 언론이 아니라 중국을 통해 한국과 외국 언론에 알려졌다.

1990년대 초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 공사 중 예성강 철다리가 무너진 일도 있었다. 이 사고로 수백명의 군인들이 숨졌고 수백명의 부상자들이 심한 장애를 입었다. 일부 사망자는 시신조차 확인이 되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미남에 수학 천재로 이름을 날리며 뭇 소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내 중학교 동창생은 3살 지능의 바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나라에 대한 원망도 못하고 머저리 취급을 당하며 천덕꾸러기로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죽고 인생이 망가졌지만 북한 당국은 사과는커녕 사고를 당한 가족들에게 통보조차 제대로 해주지도 않았다. 피해보상 같은 것은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랬던 북한이 공식 사과를 하는 것을 보니 해가 서쪽에서 뜨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마당 경제가 발전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정보 전달력과 민심이 예전과는 달라져 폭군인 김정은도 이제는 민심을 살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북한 권력이 백성들에게 사과도 할 줄 알게 된 것은 엄청난 발전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최근 북한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북한 내 마약 중독자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마약이라도 하지 않으면 북한 현실이 너무도 견디기 힘들어서 많은 청년들이 마약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김정일 시대에는 마약범을 강도 높게 단속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마약범을 방치한다고 한다. 마약도 못하게 하면 북한에서 소요가 일어날까봐 그런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평양아파트 붕괴 사고에 대한 북한 당국의 공식 사과는 예삿일이 아닌 것 같다.

북한주민들도 이제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김정은도 어느 정도 북한주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의 민주화 경험을 더 많이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북한 민주화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통합진보당 당원들의 대단한 투쟁의 용기와 기술을 북한주민들이 벤치마킹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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