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그동안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던 ‘쌍상(雙像·김일성·김정일 초상이 동시에 들어간 상)’ 배지(초상휘장)가 최근에는 생계 유지를 위해 암시장에서 비밀리에 매매(賣買)되고 있을 정도로 가치가 떨어졌다고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가 14일 보도했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이날 데일리NK와 통화에서 “과거에는 김일성 생일(4·15)를 기념해 표창용으로 당 일꾼에게만 주던 김일성·김정일 쌍상배지가 작년부터는 충성심 유도를 위해 일반주민 표창용이 되면서 예전보다 가치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최근 4·15를 맞으며 공장에서 만가동자(100% 출근자), 혹은 동(洞)에서 모범적인 여맹원들에게 쌍상 표창식이 있었는데, 바로 암시장에 나가 생계를 위해 팔았다”면서 “당장 굶게 된 주민에게 쌍상 표창보다 쌀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소식통은 “일반 주민에게 쌍상은 ‘개 목에 진주 목걸이일 정도로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 암시장 거간꾼들에게 쌍상을 조선돈 8만~9만원 정도에 매매하고 거간꾼들은 다시 돈주들에게 이윤을 붙여 되팔고 있다”면서 “결국 일반 주민들은 쌍상을 팔아 쌀 20kg(1kg 4000원)을 사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김정은상’이 제작, 보급되면 기존의 배지들은 아무 가치가 없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0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전날 열린 제13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재추대됐다는 소식을 보도하면서 1면에 보도한 김정은의 대형 사진을 실었다. 그런데 이 사진 속 김정은은 평소 입던 짙은 잿빛 인민복 차림이 아니라 검은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착용한 모습이었고,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 표시’인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지 않았다.

김정은은 2010년 9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돼 공식 후계자가 된 이래 줄곧 왼쪽 가슴에 김정일 초상이 들어간 배지를 달고 등장한 뒤 2012년 4월부터는 새로운 쌍상배지를 달고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가 종종 배지를 달지 않고 공식석상에 등장해 그 이유를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한 고위탈북자는 “김일성이 예전에 공개적인 석상에 ‘로마양복’(정장)에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자주 등장했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할아버지를 따라하기 위한 행보를 보인 것”이라며 “노동신문은 모든 주민이 보는 것이기 때문에 1면에 배지를 달지 않은 모습을 공개해 주민에게 ‘김일성과 똑같으니 그리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준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데일리NK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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