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재봉틀을 떨어뜨렸습니다. 교도관이 오더니 벌로 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소리 질렀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나는 규정대로 오른손을 다 자르는 줄 알았습니다. 손이 잘리면 일을 하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합니다. 수용소에선 팔이 없으면 죽어야 합니다. 나는 내 오른손 중지가 잘리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교도관에게 감사했습니다. 내 손목을 자르지 않고 손가락만 잘라준 것이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신동혁씨가 작년 8월 20일 유엔(UN) 북한인권 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 공청회에서 증언한 내용이다. 그는 1981년 평남 개천의 14호 관리소 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삼촌이 한국으로 탈북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를 비롯해 온 가족이 수용소에 수감됐다.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수용소에서 사는 줄 알았다고 했다.
 
  조사위원회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5개국에서 22회의 공청회를 개최했다. 신씨를 비롯해 80명의 피해자가 공청회에서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를 비롯한 각계 전문가들도 공청회에 참가해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에 대해 논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사위는 지난 2월 17일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3년 5월 7일에 위원회가 구성되고 287일 만이다. 3월 17일 유엔 인권위원회 총회는 보고서를 최종 발표했다.
 
  약 8개월간의 조사를 직접 진두지휘한 인물은 조사위원장인 마이클 커비(Michael Kirby·75)다. 그는 1993년 캄보디아 인권침해에 대한 유엔 특별 조사를 맡는 등 국제 인권 문제에 조예가 깊다. 호주에서 30년간 판사 생활을 했으며 지난 2009년 대법관으로 은퇴했다. 그는 조사기간 내내 전 세계를 돌며 모든 공청회를 직접 주관했다. 청문회 도중 탈북자들의 증언에 눈물을 보여 해외 언론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사를 마치고 최종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그에게 조사 결과에 관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메일을 보낸 지 30분이 채 안 돼 장문의 답장이 왔다. 우리나라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인터뷰는 사흘간 인터넷을 통해 이뤄졌다. 가벼운 질문부터 물었다.
 
  —조사위의 마지막 일정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지난달에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조사는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하지만 조사위 활동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최종 임무는 보고서를 25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하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문의가 많아 조사위는 3월 말까지 남은 업무를 처리하고 최종 해산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유엔 인권이사회 사무국을 통해 우리에게 의견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한국만 북한 인권에 무관심해”

지난 8월 20일, 서울 공청회에서 신동혁씨가 공개 증언하고 있다.
지난 8월 20일, 서울 공청회에서 신동혁씨가 공개 증언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는데요.
 
  “한국 국민들은 특히 이번 조사 결과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같은 민족인 북한 주민들이 학대받고 있는 지금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해결책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러분의 친척입니다. 한국에서 납치된 국민들이 지금 북한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 문제는 곧 한국의 문제입니다. 사실 이번 조사를 진행하면서 한국 국민들에게 많이 실망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젊은 사람들은 북한 문제에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부터 나서서 현재 북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이 북한 인권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느낌을 언제 받았나요.
 
  “최종 보고서가 온라인을 통해 처음 공개된 게 2월 17일입니다. 저는 그날 한국 언론이 어떤 보도를 하는지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한국 언론에서는 건물 붕괴 소식(경주 리조트 붕괴 사건)과 자국민 3명이 이집트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가장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조사위 발표를 비중 있게 다룬 언론은 없었습니다. 그날 한국의 신문과 방송에서 북한 인권에 관한 내용을 찾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당시 큰 사건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의 무관심은 공청회를 진행하면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청회를 참관한 사람들은 극히 소수였습니다. 서울에서도 가장 큰 대학(연세대)에서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참석자는 매우 저조했습니다. 물론 해외 언론들이 서울의 공청회를 비중 있게 다뤘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고서가 발표되자 영국 BBC는 보고서 내용을 가장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중동의 알자지라 방송과 미국의 CNN도 같은 날 장문의 기사를 인터넷판에 올렸습니다. 그 다음날, TV에서는 더 자세한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프랑스의 《르몽드》와 스페인의 《엘파이스》 등 권위 있는 해외 언론에서는 아직도 조사위 보고서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보도합니다. 한국 국민들도 지금까지 북한 인권 문제에 너무 무관심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보고서를 발표한 후, 한국에서 연락이 오진 않았나요?
 
  “보고서를 발표하자마자 전 세계에서 문의 전화가 쇄도했습니다. 사무국을 통해 정식으로 질의가 오는 경우도 많았고 홈페이지를 통해 개인적으로 문의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남미에서 오는 전화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한국인도 몇 명 포함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정부 관계자나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이 나에게 연락을 한 적은 없습니다. 나에게 연락한 한국인들은 인권단체 소속이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 정부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우려를 전해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사위는 유엔 인권이사회 회원국 만장일치로 설립됐습니다. 그만큼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정작 한국민들은 북한 인권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유엔의 공신력 있는 첫 보고서”
 

도쿄에서 열린 일본 공청회는 일본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조사위원회 제공).
도쿄에서 열린 일본 공청회는 일본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조사위원회 제공).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경우가 흔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조사 자체가 처음 이뤄졌습니다. 조사위는 작년 3월 17일, 유엔 인권이사회의 결의안을 통해 설립됐습니다. 회원국 47개 국가 중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없었습니다. 그만큼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컸습니다.”
 
  ―기존에도 북한 인권에 대한 조사는 있지 않았나요.
 
  “유엔의 주도로 북한의 인권 실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는 유엔과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가장 공신력 있는 보고서입니다. 우리는 이번 조사를 통해 북한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특히 북한에서 행해지고 있는 반인륜 범죄의 뿌리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혀냈습니다. 기존의 조사는 단발적인 몇몇 사례를 확보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이 보고서가 앞으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크게 바꿀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번 조사는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인력을 얼마나 투입했나요.
 
  “저를 비롯해 세르비아의 소냐 비세르코(Sonja Biserko)와 인도네시아의 마르주키 다루스만(Marzuki Darusman)이 위원으로 선임돼 지금까지 약 8개월간 같이 활동했습니다. 모두 인권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특히 다루스만 위원의 경우에는 이전부터 북한 인권 특별 보고관으로 활동하면서 북한에 관해 저보다 많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보고서에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10명의 베테랑 연구원도 함께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모두 인권 분야에 경험이 많은 전문 인력들입니다. 소속된 연구원들 이외에도 유엔 인권이사회 소속의 법률 전문가와 인권 전문가들이 조사를 도왔습니다. 이사회에서 하나의 주제로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은 처음입니다.”
 
  ―인권유린이라는 표현이 모호합니다. 중점적으로 조사한 분야는 무엇인가요.
 
  “처음 우리가 조사를 요청받은 분야는 9가지였습니다. ▲식량권의 위반 ▲수용소에 관련된 위반 ▲고문과 비인간적인 처우 ▲임의적 구금 ▲성분차별 ▲표현의 자유 유린 ▲생존권에 대한 위반 ▲이동의 자유 침해 ▲납북자 등 강제실종에 관한 문제가 저희의 주된 조사 대상이었습니다. 조사를 해야 하는 분야는 광범위했습니다. 우리는 인권유린 실태에 대한 사례 분석 이외에도 인도적 범죄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조사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 어떤 내용인가?

탈북 일본인 가토 씨가 일본 가족과 연락하기 위해 우표 뒷면에 몰래 쓴 편지.
탈북 일본인 가토 씨가 일본 가족과 연락하기 위해 우표 뒷면에 몰래 쓴 편지.

수용소에서 이뤄지는 고문을 비롯한 반인륜 범죄를 9개 항목으로 나눠 조사했다. 조사방법부터 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배경 또한 서술했다. 김일성부터 김정은까지 3대에 걸친 수십 년간의 조직적 인권탄압을 ‘반인륜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로 규정지었다. 국제법상 최악의 범죄인 집단학살죄(genocide)를 적용해야 한다는 권고도 포함돼 있다.
 
  보고서에는 구체적 예시로 공개처형, 고문, 성폭행, 외국인 납치 등의 범죄 사례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공청회 참가자들이 제출한 증거와 수용소 내부를 묘사한 그림 역시 포함됐다. 보고서는 80명의 공청회 참가자가 증언한 내용뿐만 아니라 240명의 비공개 인터뷰 내용을 가감 없이 수록했다. 수용소 실상뿐만 아니라 납북자와 외국인 납치 사례도 거론했다. 특히 북한에 자진 입북했다 탈출한 일본인 가토 씨의 증언을 5페이지에 걸쳐 실었다. 보고서에서 가토 씨는 북한이 ‘지상낙원’이 아닌 ‘지옥’이며 자신 외에 10만명가량의 일본인이 북한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보고서 말미에는 조사위원회의 권고사항을 3개 항목으로 나눠 실었다. 북한에 요구한 권고사항은 총 14개다. 독재 제도를 철폐하고 북한 주민들이 직접 공정한 지도자를 뽑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안이 눈에 띈다. 중국을 향해서도 탈북자 재송환 중지를 비롯, 6개 권고안을 발표했다. 또한 유엔 회원국이 즉각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국제형사재판 회부를 권고했다. 긴급한 경우, 유엔헌장 7장을 통한 군사제재까지 가능성을 열어뒀다.

“북한 김정은이 모두 책임”
 
  —그렇다면 북한의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건가요.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 행위는 매우 체계적이고 조직적입니다. 각 지방의 보안원이라고 불리는 보위부 관료들이나 인민군 병사들이 직접적인 가해자입니다. 이들은 모두 상급 기관인 노동당이나 국방위원회 간부들에게 지시를 받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반인륜 범죄는 결국 북한 최고 권력자, 수령(supreme leader)의 지시로 이뤄진 것입니다. 북한에서 탈출한 전직 관료들은 모두 ‘수령’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다고 증언했습니다.”
 
  —김정은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인가요.
 
  “우리는 작년 1월 김정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북한 관료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주민에 대한 탄압을 멈추라고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국제법상 모든 국가 지도자는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유린 범죄를 막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설사 직접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범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수십 년 동안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직간접적으로 반인륜 범죄에 가담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심지어 집단 학살의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우리는 보고서에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이 현재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인륜 범죄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유엔에도 북한의 수령(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에 제소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보고서에는 김정은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수령으로 명기했습니다.
 
  “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북한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은 3대째 통치권을 이어가는 독재국가입니다. 동시에 전체주의 국가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인륜 범죄는 매우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구조적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는 김정일에게 모든 책임이 있었지만, 보고서 말미에 현재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의 책임을 명확히 기술했습니다.”


북한 개혁안 14개 권고
  

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던 김광일씨가 그린 고문 장면.
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던 김광일씨가 그린 고문 장면.

  —중국이 북한과 협조해 탈북자들을 강제 송환하고 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조사 결과, 북한은 중국에서 북송된 탈북자들을 모두 노동 수용소에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고문과 핍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강제로 북송된 임신부는 중국인의 피가 섞였을 수 있다는 이유로 모두 낙태를 당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죽였다는 진술도 있습니다. 중국의 한국 대사관과 접촉하거나 현지 교회로 숨었던 탈북자들은 대부분 처형됐습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이처럼 인권유린 상황이 심각함에도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북한에 강제 송환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난민 보호에 관한 국제법에 따라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중국 공안은 아직도 북한과 협조해 탈북자를 색출하고 있습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는 작년 12월 16일, 중국 정부에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고 보호해 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습니다.”
 
  —보고서 결론에 북한에 보내는 권고문이 포함돼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북한의 현재의 인권유린 실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직접 명시했습니다. 북한 최고 수뇌부부터 변화해야만 현재 상황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내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노동 수용소를 비롯한 인권 탄압 시설을 즉시 폐쇄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법 시스템을 비롯한 국가의 행정제도를 모두 바꿔야 합니다. 북한의 정치구조는 더 투명해지고 공정해져야 합니다. 사법기관은 분리시키고, 독재를 철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자유롭게 대표를 뽑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북한이 해결해야 할 분야로 ▲정치범 석방 ▲정치범 수용소 폐쇄 ▲사법, 치안제도 개혁 ▲사형제도 폐지 ▲언론의 자유 보장 ▲인권 교육 실시와 전쟁 위협 중단 ▲종교의 자유 보장 ▲신분 차별 철폐 ▲양성평등 ▲식량 배급 불균형 해소 ▲거주지 이전의 자유 허용 ▲납북자 문제 인정 ▲이산가족 상봉 ▲반인륜 범죄자 처벌 등 14개를 지목했다. 특히 조선노동당과 국방위원회를 위주로 하는 정치구조를 바꿔서 북한 주민들이 투표로 뽑은 국회를 구성하는 것을 가장 우선 과제로 꼽았다.
  
  “임시 특별재판소 설치해서라도 처벌해야 해”
 
  —북한이 개혁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해 보입니다.
 
  “조사위가 더 이상 할 일은 없습니다. 이제 책임은 국제사회로 넘어갔습니다. 유엔 회원국들은 이제 우리가 제시한 권고사항을 이행할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추가적인 반인륜적 범죄로부터 보호받도록 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한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책임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더 강력한 인권보호 법안과 한반도 통일을 위한 북한의 점진적 개방도 함께 논의돼야 합니다. 북한은 자체적으로 반인륜 범죄자를 처벌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유엔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 조사위는 안전보장이사회가 직접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반인륜 범죄자를 회부할 것과 가장 책임이 큰 김정은 개인에 대한 경제제재를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더 절실합니다. 우리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북한 인권만을 전담하는 유엔 최고인권위원회 산하 특별 기구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경제제재를 말했는데, 왜 김정은 개인에 대한 경제제재로 한정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경제제재가 북한 전체를 대상으로 행해지는 것에 반대합니다. 제재가 북한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식량 원조나 생필품 원조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의 인권을 위한 원조는 어떤 경우에도 지속돼야 합니다. 원조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지속적인 감시 또한 필요합니다.”
 
  —권고사항 중, 안전보장이사회에 중국이 포함돼 국제형사재판 회부가 어렵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입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국제형사재판을 거부하면 북한을 기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국제형사재판이 열리지 않을 경우, 유엔에 임시 특별재판소를 설치할 것도 같이 권고했습니다. 유고슬라비아나 르완다의 경우처럼, 유엔 안보리는 유엔 헌장 7장을 적용해 특별재판소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안보리에서 특별재판소를 설치하는 데 실패하더라도 유엔 총회의 의결을 통해 설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형사재판에 회부되지 않더라도 북한에 인도적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북한, 반박 요구에도 답 없었다”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중국과 북한은 정면으로 반박했다. 특히 중국 관영신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랴오닝성 사회과학연구원의 결과를 인용해 조사위의 결과를 부정했다. 대부분의 정보가 탈북자를 통해 나왔기 때문에 왜곡과 과장된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북한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존엄 높은 우리 공화국(북한)의 영상(이미지)을 깎아내리고 압력 도수를 높여 우리 제도를 허물어 보려는 극히 위험한 정치적 도발이며 수십 년 동안 미국이 감행하고 있는 추악한 적대 행위의 산물”이라고 밝혔다.
 
  —북한과 중국에서 보고서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들었습니까.
 
  “중국이 우리에게 직접 이의를 제기한 적은 없습니다. 조사기간 동안 우리가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신뢰성입니다. 실제로 우린 북한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강조한 것이 공청회입니다. 우리는 공청회를 통해 피해자들에게서 구체적이고 자세한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공청회는 전 과정을 공개 진행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방청객뿐만 아니라 각국 언론인 수백 명이 공청회를 참관하고 취재했습니다. 공청회는 모두 동영상으로 촬영돼 지금도 UN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북한이 보고서 발표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우리는 북한이 공청회에 참가해 증인들의 증언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참석 요청을 수차례 보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모든 공청회 일정이 끝나자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청회에 참석한 증인들을 사기꾼(slander), 인간쓰레기(human scum)로 몰았습니다. 저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증인들이 거짓 증언을 하고 있다면 반박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북한에 요구했지만, 이 또한 답이 없었습니다.”
    
  “240명 넘는 증인이 북한 실상 고발”
 
  —공청회를 서울에서만 개최한 것이 아니더군요.
 
  “전 세계를 돌며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제네바에서 시작한 공청회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서울에서 5일 동안 9차례에 걸쳐 열렸습니다. 그다음 찾아간 곳은 일본의 도쿄였습니다. 5차례에 걸친 공청회를 통해 납북자 문제 피해자들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 워싱턴과 영국 런던에서는 4번에 걸친 공청회를 통해 국제법, 북한 인권 전문가들로부터 많은 견해를 들었습니다. 이 모든 증언은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정보들이었습니다.”
 
  —공청회에 나가는 것을 꺼리는 증인들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북한에 남은 가족의 신변을 걱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증인들을 위해서 우리는 비공개 인터뷰를 실시했습니다. 240명이 넘는 증인들이 비공개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고발했습니다. 이 중 대부분은 북한에서 관료 생활을 하다 탈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비공개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실상에 관한 고급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증인들과는 어떻게 만났는지요.
 
  “대부분의 증인은 조사위에 먼저 연락해 왔습니다. 물론 우리가 먼저 찾아간 증인들도 많습니다. 증인들은 먼저 유엔 인권위원회 사무국 전문가들과 면담을 나눴습니다. 사무국 전문가들은 증인들의 증언을 신뢰할 수 있는지 기존 정보들과 대조해 검증했습니다. 신뢰할 만한 증인이라고 사무국에서 인증한 사람들만 우리와 인터뷰를 하거나 공청회에서 증언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증언 이외의 다른 증거물은 없었나요.
 
  “조사위가 증언에만 의존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북한의 최신 위성사진을 통해 증언에 나오는 북한 노동 수용소의 현황을 면밀히 조사했습니다. 이전 연구를 통해 바뀐 점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또한 북한 내부 문건을 입수해 분석하는 작업도 병행했습니다. 북한 내부뿐만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 사진, 비디오, 문건 등 총 80개의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정보는 모두 검증해서 보고서에 담았습니다.”
 
커비 위원장이 작년 12월 북한 김정은에게 직접 보낸 서신.
커비 위원장이 작년 12월 북한 김정은에게 직접 보낸 서신.

“중국, 국경 지역 조사 막았다”

  —혹시 조사기간 동안 북한이 협조했나요.
 
  “우리는 조사기간 내내 북한에 협조를 구했습니다. 협조 공문을 수없이 보냈지만 실제로 협조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는 더 확실한 증거들을 수집하기 위해 북한 입국을 요청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조사위가 북한에 사무실을 설치하거나 노동 수용소에 접근하는 것을 불허한다는 답변만 보내왔습니다. 결국 우리는 북한에 입국하지 못했습니다. 위성사진을 통해 노동 수용소의 현황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국에서도 국경 지역 조사를 거부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이 조사위가 베이징에서 학술기관, 정부 관료들과 인터뷰하는 것을 거부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는 북한과 중국 접경지대를 살펴보고자 중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접경 지역에는 탈북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이 또한 불허했습니다. 하지만 제네바에 있는 중국 대표부는 우리가 요청한 자료들을 모두 제공했고 우리에게 긴밀히 협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청회에서 눈물을 흘린 것이 화제가 됐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나요?
 
  “공청회 내내 모든 피해자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일관되게 진술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북한의 실상을 밝히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공청회에 참가했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당했던 끔찍한 기억들을 듣는 과정은 힘들었습니다. 기자회견 때마다 항상 말해왔지만, 조사위의 보고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공청회 동영상을 봤으면 합니다. 동영상은 전 세계 어디서나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 공청회에서 피해자들이 증언하는 장면을 본다면,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청회 동영상 보는 법

   조사위가 주관한 모든 공청회는 유엔 인권위원회 홈페이지(http://www.ohchr.org/EN/HRBodies/HRC)를 통해 언제든지 시청할 수 있다. 홈페이지 메뉴에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특별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다. 코너에는 372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 전문을 비롯해 모든 공청회 동영상과 회의록이 공개돼 있다. 동영상은 유엔 공식 언어인 영어를 비롯해 6개 언어 자막이 지원되며 한국인 시청자를 위해 특별히 한국어 자막을 추가했다. 유엔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방송국인 UN WEB TV(webtv.un.org)를 통해서도 시청할 수 있다. 검색창에 ‘공청회’를 검색하면 조사위원회가 진행한 모든 공청회 목록이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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