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정순 누이, 재건 동생, 왜 그리도 일찍 세상을 떴소.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먼저 갔소…. ”

적십자사로부터 북한에 생존해 있는 아내, 아들, 딸의 명단을 전해 들은 이재걸(이재걸·74)씨. 19세 때 결혼한 아내와 아들·딸, 그리고 코흘리개였던 두 동생이 살아있다는 연락을 받은 이씨는 “모두 다 죽었는 줄 알았는데 그나마 몇 살아있으니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쟁이 난 이듬해 8남매 중 형제 4명만이 아버지와 함께 피란온 뒤, 단 한번도 북에 남은 가족 소식을 듣지 못했다. 아버지는 73년 돌아가셨고, 이번 명단 확인으로 어머니와 큰 누님, 다섯째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확인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7형제네’로 불렀어요. 그렇게 우애좋고 화목했던 우리 가족이 왜 수십년간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했는지…. ” 남으로 내려온 이씨 4형제와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부두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유엔군 보급물자를 나르며 그 일당으로 생활했다. 53년 말 군대에 입대한 이씨는 제대 후 건설노동자로 일했고 58년에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2남1녀의 자식을 낳았다. “분단 50년 동안 너무 울어서 막상 만난다고 해도 눈물이 나올 것 같지 않아요. 하지만 ‘왜 우리를 데려가지 않았느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

/장일현기자 ihj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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