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를 타고 이산가족 상봉에 나선 김섬경(90)씨와 홍신자(83)씨가 21일 건강상태 악화 탓에 북측 가족을 뒤로 하고 조기 귀환,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김씨와 홍씨는 이날 외금강호텔 내 숙소에서 북측 가족과 개별상봉을 마친 뒤 낮 12시30분께 숙소를 출발, 오후 1시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강원도 속초로 귀환했다.

앞서 홍신자씨는 이날 오전 9시부터 객실 709호에서 북측 동생 홍영옥(82)씨와 조카 한광룡(44)씨를 만나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몸이 불편한 신자씨 대신 남에서 함께 온 딸 이경희(58)씨가 주로 영옥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경희씨는 대화내용을 묻는 유중근 적십자 총재에게 "평생 소원을 푸셨다"며 "68년만에 만난 여동생이 북쪽에서도 잘 살고 있다고 하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올라가신다"고 전했다.

낮 12시25분께 작별의 순간이 되자 영옥씨는 말이 없는 신자씨를 향해 "또 만날 날이 있을 거야. 통일될 때까지만 잘 기다려줘"라고 말했다. 영옥씨는 "제 아무리 잘 산다고 해도 걱정이 된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나타냈다.

경희씨는 영옥씨 등 북측 가족과 대화 내용도 공개했다.

경희씨는 "밥을 겨우 먹는 줄 알았는데 (이모가)딸이 굉장히 잘 산다고 하더라. 이모 남편분은 김일성 친필도 하사 받은 문학가라고 했다. 화가 아들도 있는데 보석화를 그린다고 하더라"라면서도 "텃밭에서 감자와 무를 키워 장에서 판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섬경씨도 같은시간 북한에 두고온 전 부인의 딸 김춘순(67)씨, 아들 진천(65)씨와 마지막 만남을 갖고 작별했다.

섬경씨는 딸에게 치약·칫솔·신발·손톱깎이 등 생필품을 선물했고 춘순씨는 아버지에게 평양수·백두산들쭉술·대평곡주·밥상보·스카프 등을 선물했다. 밥상보에는 장수하라는 의미의 학이 새겨져 있었다.

춘순씨는 남한에서 온 배다른 남동생 진황씨에게 "아버님을 데려가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진황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화장해서 유골로 모시다가 통일이 되면 북한의 선산으로 갖고 가겠다"고 말했다.

대화 중 일부 정치적인 발언도 오가며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빚어지기도 했다.

진황씨는 "나라에서 55세 이상 되면 연금을 준다고 하면서 계속 그런 얘기를 하니까 사상교육 받은 기분"이라며 "통일이 빨리 돼야한다는 얘기를 자꾸 했는데 장군님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 통일에 각자가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라고 대화내용을 전했다.

북측 아들 진천씨는 헤어지는 순간 이복동생 진황씨에게 "헛살지 마라. 통일이 되는데 뭔가 해야지"라며 "남북겨레 하나가 되게 뜻있게 살자"고 말했다.

작별인사 후 성겸씨와 진황씨가 외금강호텔을 떠나려 하자 현장에 있던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성겸씨를 향해 "오실 때보다 혈색이 좋은 것 같다. 서울 가서 건강하게 힘내시라"며 "잘 견뎌줘서 감사하다. 이런 일이 계속 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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