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 ‘평양·남포’ 유리…
포스코 ‘나선’, 현대중공업 ‘원산’ 주목

남북통일은 남한 기업들에게 기회이면서 도전이다. 어떻게 준비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통일 후 한반도의 산업은 어떻게 재편될까.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남한 기업들은 북한의 어떤 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이 유리할까.

북한의 산업 현황에 따른 통일 후 한반도의 산업지도를 가상으로 그려봤다.

중국 단둥과의 접경지역인 신의주는 대중국 진출 전략지로서 산업입지 잠재력이 높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잇는 조중우의교(압록강대교).
중국 단둥과의 접경지역인 신의주는 대중국 진출 전략지로서 산업입지 잠재력이 높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잇는 조중우의교(압록강대교).
통일 이후 북한의 산업구조는 급격하게 재편될 전망이다. 기존 산업시설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미 북한의 많은 국영기업들은 1990년대 경제위기 이후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조업을 하고 있는 대부분 기업들의 가동률도 크게 낮은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개성공단 입주업체 대표는 “개성이나 평양 인근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공장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통일 이후에도 생존할 수 있는 북한 기업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북한의 주요 산업별 기술수준은 업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남한에 비해 최소 5년에서 최대 30년까지 뒤져 있다. 기술 격차로 인해 우리 기업이 쓸 수 있는 시설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건설·관광·지하자원개발·물류산업 특수

북한은 산업의 기반과 경쟁력이 취약하지만 이는 반대로 통일 이후 북한 지역 산업의 개발 잠재력이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북한의 산업은 중공업 위주의 정책에 따라 그나마 기계공업의 기반이 갖춰져 있으며, 석탄을 원료로 한 화학공업의 발전 가능성이 높다. 낙후되고 빈약한 경공업은 기술혁신에 따라 크게 성장할 수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와 높은 교육 수준의 노동력은 북한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일 이후 북한에 새로운 입지를 공급해 산업을 육성하고, 풍부한 지하자원에 자본이 투입되면 북한 산업이 급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통일 이후 초기에는 남한의 자본과 원자재를 이용한 임가공 수준의 산업구조가 불가피한데 북한 주민이 활발한 창업을 통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남한에서 경쟁력이 약화된 산업들의 유휴설비를 북한지역으로 이전해 남한은 성장하는 첨단산업 중심으로, 북한은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중심으로 분리 발전시키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전기·전자, 섬유·의류, 철강, 정밀기계, 조선, 자동차산업 등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을 개선시키거나 북한에서 특화할 수 있는 산업이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건설, 철강, 기계산업을 비롯해 관광산업, 지하자원 개발산업, 유통·물류산업의 특수가 예상된다.
 
 
통일 후 북한 경제가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게 되면서 북한의 산업개발을 민간기업이 주도하게 된다. 이들의 진출이 유력한 곳으로는 북한의 기존 산업지구 중 평양, 남포, 개성, 신의주, 원산, 함흥, 청진, 나선 등이 꼽힌다. 이들 지역 대부분은 노동력과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대외무역을 진행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김갑성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기존 공업지구에는 이미 공장 부지와 건물, 주변 도로 등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며 “이러한 기본 시설을 적절히 활용하면 개성공단의 경우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산업단지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한 산업은 서해안권과 동해안권으로 양분돼 있다. 서해안권 지역은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이 발달해 있고, 동해안권 지역은 제철·화학 등 중화학공업이 발달해 있다. 제조업체는 3만개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업체는 평양, 남포 등 대도시와 김책, 청진, 원산, 신의주 등 중소도시에 산재해 있다.

개발은 항만개발이 우선돼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석 KDI 북한경제팀장은 “물적 인프라로는 항만개발에 이어 에너지(전기), 통신, 육송수단(도로·철도) 순으로 개발해야 할 것”으로 제안했다. 인적 인프라로는 20~40대 대상 직업재교육을 가장 먼저하고 초·중·고·대학교 공교육, 50대 이상 특수세대 재교육 순으로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북한 개발은 단순히 어느 한 부분만의 개선으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상준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동북아와 연계되고, 한반도에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한다는 차원에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연구원은 동북아와 한반도 차원의 직접적인 파급효과를 갖기 위한 서해축 및 동해축 개발 사업, 9개 핵심거점을 중심으로 한 북한 내 지역개발과 중·러 접경지역에서의 초국경 지역개발사업을 제안했다. 9개 핵심거점은 신의주-단둥, 평양-남포, 개성-해주, DMZ 주변 평화지대, 나선·청진-훈춘(중국)-하산(러시아), 백두산-개마고원, 신포-단천, 함흥-부전고원, 설악-금강-원산 등이다.
 
 
남한 기업 평양·남포에 집결

남한의 민간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한 지역은 평양·남포다. 통일이 될 경우 개발의 중심축은 서울-평양-신의주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인적자원과 인프라는 다른 지역보다 월등하다. 또 북한 최대 인구·소비지역으로 양질의 노동력을 얻기 쉽고, 교통여건이 상대적으로 잘 갖춰져 있어 원재료의 조달이 용이하다.

이 때문에 소비재를 생산하는 경공업과 약간의 중화학공업이 가미된 산업의 입지로 탁월하다. 이러한 입지조건을 염두에 두면 삼성·LG전자의 가전부문, 현대·기아자동차, 롯데·CJ·신세계 등이 진출할 수 있다. 이외에 북한 전역을 서비스 대상으로 한 SK텔레콤·KT 등 통신업체도 평양 진출을 최우선으로 할 것으로 보인다.

중공업과 경공업이 고루 발달해 있는 평양·남포에는 기계공업, 전기·전자, 조선, 화학, 섬유·의복 등의 다양한 산업이 분포해 있다. 북한 최대의 기계공장뿐 아니라 각종 기계공장이 들어서 있으며, 대동강TV수상기공장 등 대부분의 전기·전자공장도 이 지역에 집중돼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삼성·LG전자가 눈독을 들일 만한 입지조건이다. 초기에는 남한에서 부품을 들여와 최종 조립하는 임가공 형태에서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삼성전자는 남북경협사업을 통해 2000년부터 2010년 5월까지 연간 2만~3만대의 브라운관TV를 임가공 생산한 경험이 있다. LG전자 역시 평양에서 컬러TV를 조립생산하기도 했다.

남포에는 북한 서해의 최대 조선소가 자리 잡고 있으며 평화자동차종합공장이 있다. 남포조선소에는 중소규모의 수리조선업체들이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및 관련 부품업체들의 진출도 유력하다. 남포항에서 2㎞ 거리에 있는 평화자동차종합공장의 총 부지는 10만㎡(33만평)지만 주변이 농토나 야산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확장이 가능한 상태다. 현대·기아차가 이 공장을 아예 인수하거나 인근 지역에 조립공장을 세울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 대북 관련 연구원은 “현대·기아차가 2000년대 중반까지 평양·남포 지역에 조립라인 건립을 검토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주력모델은 수출용보다는 북한 내수시장을 겨냥한 화물트럭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국, 러시아 등에 현지생산체제를 갖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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