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되겠다는 꿈, 꼭 이루거라. 그리고 반드시 남(南)으로 가라."

그것이 아버지의 유언이 돼버렸다. 지난 4일 서울대 의대 합격 소식을 들은 이서영(25·가명)씨는 "함께 탈북(脫北)하다가 붙잡혀 감옥에서 목숨을 잃은 아버지가 떠올라 한참을 통곡했다"고 말했다.

1989년 신의주에서 태어난 이씨는 대학교수 아버지와 의사 어머니 아래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그러나 2007년 평양의 한 대학 생명공학과에 진학한 후 평양의 '속살'을 보고 북한 체제에 대해 심각한 회의(懷疑)를 느꼈다고 한다. "북한이 자랑하는 그 화려한 지하철역에 노숙인이 넘쳐났어요. 옛날 같으면 외국인 관광객을 의식해서라도 숨겼을 풍경이거든요."

일과가 끝나면 평양의 교수·의사·교사 등 '엘리트' 시민마저 시장에 나와 장사를 해야 생계가 유지되는 모습을 보며 이씨는 "이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느냐"며 좌절했다. 이를 본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제라도 사람답게 살자. 함께 남으로 가자"며 2009년 탈북을 시도했다. 간신히 압록강은 건넜지만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됐고, 수용소에서 3개월 동안 취조를 받은 끝에 서영씨와 어머니, 남동생은 일단 풀려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끝내 다시 볼 수 없었다.

2012년 결국 탈북에 성공한 서영씨는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양천구 신정동의 임대아파트에 보금자리를 꾸렸다. 2년 동안 하루 5시간 수면과 고등학생인 동생 도시락 싸주는 시간을 빼곤 모두 공부했다고 한다.

이씨는 "한국 젊은이들은 통일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북한에선 그래도 '우리 민족'이라는 의식이 남아 있는데, 한국 젊은이들은 북한을 미국이나 일본 같은 '외국'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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