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던 미국인 교수 부부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재입국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북한 헌법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발표하게 한 게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매체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북한 유일의 국제대학인 평양과기대에서 계량경제학과 경영학을 가르쳤던 로버트 모이니헌과 샌드라리 모이니헌 부부는 지난해 말 북한 당국으로부터 재입국 비자가 거부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들은 올 3월 봄학기에 다시 평양과기대에 돌아가 강단에 설 예정이었다. 뜻밖의 통보에 부부는 김진경 김진경 평양과기대 총장과 대학 관계자들에게 연락했지만, 뚜렷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고, 대신 “비자 담당 인사가 유감의 뜻을 전했다”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부부는 VOA에 “외국인이 90일 이상 체류할 경우 북한 내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 새 규정 때문에 강의 일정을 예정보다 앞당겨서 지난해 11월 중순에 모두 끝냈다”면서 “북한의 건강검진 기기가 60년대에 만들어진 장비들이라 과다한 방사능 피폭 위험이 있다고 평양과기대에 주재하는 미국인 의사가 조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부는 “외국인 교수들이 북한에 입국한 날짜가 다르기 때문에 이 문제는 각자 알아서 판단해야 했지만, 90일 이상 체류하면서 건강검진을 받은 외국인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북측과의 사전합의 사항을 어긴 것도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샌드라리는 VOA에 “지난 해 북한을 떠날 당시 북한인 학장이 올 3월에 다시 입국해 강의를 맡아달라고 부탁했고, 2013-2014학년 부교수 임명장도 이미 수여해 놓고 이제 와서 입국 비자를 거부한 북한 측의 처사는 이해할 수 없다”면서 “나는 아직도 평양과기대 학생들을 다시 만나 가르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들 부부의 재입국 비자 발급을 거부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의 단초는 이어진 인터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날 VOA와의 인터뷰에서 샌드라리는 자신이 가르쳤던 ‘기업가 정신’과 ‘인력관리’ 등 두 과목에 대해 “북한에서 처음 개설된 강의였다”면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 사람들은 지난 30년 동안 투옥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이어 “학생들이 ‘기업가 정신 강의’에 처음 왔을 때 고개를 들지 않고 질문도 별로 안 했다”며 “학생들에게는 기업가 정신이 위험한 사상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고 강의 당시를 회상했다. 이 때문에 샌드라리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라”고 권했고, 교수와 생각이 다르면 “다르다”고 말하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또 샌드라리는 “북한 헌법을 영어로 번역해 복사해 나눠주고, 자신의 강의 내용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발표하게 했는데, 북한 당국이 학생들에게 북한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강의시간에 말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덧붙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만약 자신의 강의에 문제가 있었다면, 학생들에게 비판적인 사고를 가르치고 북한 헌법이 실생활에 적용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 것이라는 설명인 것이다.

실제로 샌드라리는 VOA에 “북한 당국이 재입국 비자를 거부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는 추측을 내놨다. 그러면서 “평양과기대 학생들이 똑똑하고 조국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며 “북한의 희망인 이 학생들과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영국 BBC방송은 지난 3일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 북한의 유일한 사립학교’라며 평양과기대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방송은 이 대학의 학생들에 대해 “(이 학교) 학생 500여명은 북한 정권이 엄선한 고위층 자녀로 앞으로 북한을 이끌 엘리트”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평양과기대는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 자선단체가 350억원을 지원해 지난 2010년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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