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일을 바라보는 중국의 생각에서 변화의 조짐이 감지(感知)된 것은 수년 전이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주장이 거침없이 나오고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은 작년 말 발간한 '2014년 아시아·태평양 지구 발전 보고서'에서 5~10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세 가지 시나리오로 '남북통일' '현상 유지' '(국지적) 군사 충돌'을 꼽았다. 보고서는 "이 중 통일 문제가 향후 남북 관계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중국이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誤判)을 불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사회과학원은 우리의 내각에 해당하는 국무원(國務院) 직속인 중국 최대 싱크탱크다. 보고서의 주 기조는 대체로 북한 붕괴보다는 남북 화해 협력에 맞춰져 있지만, 중국 국책 연구 기관 보고서에 '북한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 자체가 놀라운 변화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 군(軍), 학계의 소장파는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하는 중국 공산당의 기존 입장과 달리 북한은 중국을 끊임없이 곤혹스럽게 만드는 '부담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고위 관리들까지 한국 지도자들과 나눈 비공개 대화에서는 남북통일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일 독일에서 열린 한 국제 안보 회의에서 "(2월 중) 중국을 방문해 남북통일을 비롯한 북한 이슈에 대해 논의하겠다"며 "한국·일본과도 통일 등 북한 이슈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외교 책임자의 입에서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은 그간 중국 등과 막후 외교 채널에서 북한 급변 사태 등을 논의했어도 이 사실을 철저히 함구해 왔다.

아직 북한의 의도와 실태가 불투명한 만큼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분단 69년 동안 통일의 주변 여건이 이 정도나마 조성된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의 이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한·미·중 간 한반도 통일을 포함한 전략 대화의 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전략 대화의 틀은 북한의 참여 가능성까지 열어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우리 머리 위에서 논의했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된 2009년 미국과 중국이 북한 급변 사태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힌 적도 있다. 한반도 통일 국제 공론(公論)의 장에서 우리도 그 중심에 설 수 있느냐는 것은 통일의 방향만이 아니라 통일의 실현 가능성까지를 결정하는 관건(關鍵)이 될 수 있다.

다행히 이제 한국이 빠진 한반도 논의는 점점 생각하기 어렵게 되고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 보고서는 그런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우리가 이미 통일의 길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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