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안 낳기로 약속한 뒤 나이 쉰 다 돼서 결혼하고 산 지 33년째야. 자식 버린 죄인들이 무슨 결혼을 하나. 둘이 서로 의지하고 살기로 한 거지. 만약 자식 낳았다면 상봉 신청 못 했을 거야. ”

6·25 전쟁 때와 1947년 북에 가족들을 남겨놓고 각각 월남한 이선행(80), 이송자(81)씨 부부는 27일 이번 이산가족 명단에서 북에 있는 가족들이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확인한 가족은 따로따로 였다. 이선행씨는 아내와 자식, 이송자씨는 시아버지와 자식을 놔두고 따로 월남한 이산가족으로 남한에서 68년 재혼한 부부이기 때문이다.

평안북도 영변이 고향인 이선행씨는 북에 남겨온 아내와 아들 세 명, 그리고 처조카에 대한 상봉신청을 해 이 중 아내 홍경옥(78)씨와 큰아들 진일(58), 진걸(55)씨가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50년 6·25전쟁 때 피란가다 대동강에 다다랗는데 다리가 끊긴 거야. 아내와 아이들은 나중에 데려오기로 하고, 나만 마지막 배를 탔어. 그게 마지막이야. 연합군이 그렇게 밀릴지 몰랐어. ”

이씨는 아내가 임신 중이었다고 했다. 아내 뱃속 아이는 이름도 몰라 상봉 신청을 못했다.

함경남도 문천이 고향인 이송자씨는 소식이 끊긴 남편을 찾아 남한으로 내려왔다가 48년 38선이 봉쇄되면서 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

“글쎄, 처음엔 잠도 안 왔어. 아침엔 베개가 항상 젖어 있었으니까. 그래도 지금 이 이를 만나서 잘 살았지 뭐. 화가 나면 ‘자식 버린 죄인이…’라고 서로 욕하면서 말이야. ”

이송자씨는 아들 박의식(60), 박산웅(56) 두 명을 상봉신청했는데, 의식씨가 살아있는 걸 확인했다.

부부는 “살아생전 통일될지 모르니까 그 때 자식들한테 집이라도 남겨주자”며 열심히 돈 벌었고, 지금은 각자 명의의 집을 한 채씩 가지고 있다. 96년에는 “우리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며 장기는 물론, 시신까지 기증하는 서약을 하기도 했다.

이선행씨는 “어떻게 생각하면 북한이 내 자식을 살려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고맙다”며 “만약 생사만 확인하고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서신 교환이라도 가능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송자씨는 “남편은 북의 아내와 아들들을 만나고, 나도 아들을 만나게 됐으니 질투는 안 한다”며 웃었다.

/정성진기자 sj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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