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高手들이 본 새해 세계경제] [3] 시티그룹 고문 로즈

-不實 대출 관리 잘해야
싱가포르·홍콩과의 경쟁보다 시베리아 개발 등 염두에 둬야

-金 모으던 한국 평생 못잊어
1997년 IMF 국제채권단 의장… 2008년 韓·美 통화 스와프 체결 숨은 공로자 역할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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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위기는 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이 강합니다.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 위기는 태국에서 시작됐지만 인도네시아로 확산됐고 곧바로 한국을 덮쳤습니다. 금융 위기를 예방하려면 은행 등 금융 시스템에 과도한 부실 여신이 없는지 끊임없이 점검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윌리엄 로즈(78·사진) 시티그룹 고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의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것) 축소 이후 신흥국이 자금 유출로 위기를 겪을 것"이라며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충분해 위기 가능성이 낮지만 그래도 방심하지 말고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티은행에서 53년간 근무하며 1980~1990년대 금융 위기를 겪은 멕시코·우루과이·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국가들의 외채 협상을 주도해 글로벌 금융 위기 전문가로 주목받았다. 1997년 한국이 외환 위기를 맞았을 때 국제채권위원단 의장으로 한국의 채권 만기연장 협상을 이끌어내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에 숨은 공로자 역할을 하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는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윌리엄 로즈 글로벌 어드바이저스'라는 글로벌 금융 컨설팅 업체의 대표이자 시티그룹 수석 고문을 맡고 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18일 오후 미국 뉴욕 시티그룹 본사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됐는데, 마침 그날 연준이 양적 완화 축소 결정을 발표했다.

그는 "두 달 전부터 12월에 연준이 양적 완화 축소에 들어갈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아무도 안 믿더라고요"라며 웃었다. 그는 "사람들은 보통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추세를 공부하지 않고, 단순히 남의 의견을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하지만 나는 오랜 경험을 통해 육감을 갖고 있다. 그게 내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 위기를 예측할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그의 기본적 시각은 낙관과 애정이었다. "외환 위기 때 부채 협상을 하러 한국에 갔을 때 주부들이 금이나 귀금속을 들고 한국은행 앞에 길게 줄 서 있는 광경은 평생 잊을 수 없어요. 내가 구조조정에 참여했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했죠. 한국인들은 중국과 일본이란 강대국 틈에서 수천년간 생존할 만큼 강하고 현명한 국민입니다."

그는 "한국은 국가적으로나 국민적으로 불굴의 정신과 용기, 결단력 등 강자에게 필요한 자질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올해 3%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며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이 정도 성장하는 것은 좋은 성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연준의 양적 완화 축소가 신흥국의 자금 유출과 일본 엔화 약세라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위기에 대한 대비는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흥국의 자금 유출로 중국 경제가 둔화될 경우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피해가 커질 것입니다. 또 엔화 약세가 가속되면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 자동차·반도체·전자 등 주요 산업이 타격을 받게 되겠죠."

로즈 고문은 "한국의 은행들은 수익이 없는 부실 여신 때문에 항상 문제를 겪었다"며 "위기를 막으려면 은행들이 과도한 부실 여신을 짊어지지 않도록 리스크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감독 당국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막상 글로벌 위기가 터지면 다른 나라 상황은 통제할 수 없다"며 "감독 당국이 은행 경영진과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국내 금융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의 금융산업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묻자 그는 "과거 정부에서 시도했던 동북아 금융 허브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이 이미 아시아 금융 허브 역할을 하고 있는 싱가포르·홍콩과 경쟁하려 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베리아 개발과 북한 통일 이후 개발까지 염두에 두고 동북아 금융 허브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 허브 구축은 한 대통령 임기 동안 달성할 수 있는 단기 과제가 아니다"면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이명박 정부가 완결 지은 것처럼 대통령이 바뀌어도 추진력을 잃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장기 어젠다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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