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방송 '탈북자 DJ 3인방' 김충성·주경배·김혜숙씨]

北·中 국경서 우리 방송 몰래 듣고 자유 찾아 왔다는 사람 많더라고요
南에서 찾은 평화, 北까지 전파되길

"안녕하십네까, 여기는 대한민국 서울입네다. 지금 이 방송 듣고 계신 중앙당 간부 동무들, 보위부 지도원 동무들, 인민군 군인 동무들, 전파탐지소 탐지수 동무들, 북한 주민 여러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너희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남북이 예수 사랑 아래에서 하나가 되기를 기도합네다."

새벽 1시, 경쾌한 함경도 사투리가 라디오를 울린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극동방송의 '안녕하세요, 여기는 대한민국 서울입니다'의 진행자 김충성(37)씨. 김씨는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탈북자다. 김씨가 한국 땅에서 고향을 향해 메가폰을 잡은 이유는 단 하나다. 라디오 방송을 듣고 북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참혹한 현실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난 9일 라디오 DJ인 주경배, 김혜숙, 김충성씨(왼쪽부터)가 서울 마포구 극동방송 스튜디오에서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주씨는 개인적 사정으로 얼굴을 일부 가렸다. /이진한 기자
지난 9일 라디오 DJ인 주경배, 김혜숙, 김충성씨(왼쪽부터)가 서울 마포구 극동방송 스튜디오에서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주씨는 개인적 사정으로 얼굴을 일부 가렸다. /이진한 기자
김씨를 비롯한 극동방송 탈북자 DJ 3인방 주경배(45)씨와 김혜숙(49)씨를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극동방송 본사에서 만났다. 녹두색 코듀로이 양복을 입은 김충성씨, 레인코트 아래 카디건을 받쳐 입은 주경배씨, 롱코트에 하이힐을 신은 김혜숙씨는 여느 서울 사람 차림이었지만, 입을 떼자 북한 사투리가 술술 터져 나왔다.

"'치안대 자식놈이 왔구먼', 요 한마디가 북에서의 제 인생을 무너뜨렸습네다." 김충성씨는 군 입대 때 신원조회를 받다가 할아버지가 6·25전쟁 때 국군 치안대를 2주간 도운 죄로 집안 전체가 반동으로 분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당시 아나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치안대 자식' 신세가 되자 꿈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결국 그는 지난 2001년 압록강을 건넜다. 김씨는 "북에서 버린 꿈을 남에서 찾았습네다" 하며 웃었다.

주경배씨도 "북한은 소련의 괴뢰국이다"고 말해 요덕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온 부친 탓에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고 자랐다. 2006년 세상을 떠난 부친의 "살라!"는 유언에 북한 탈출을 결심했다. "아바지는 분명 자유와 민주의 땅으로 가서 '사람답게 살라'는 뜻에서 말씀하셨을 겝네다." 3년상이 끝난 2008년 국경을 넘었다. 처음에는 고깃집 잡부로 전전하며 한국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어엿한 '방송인'이 됐다. "검열 없이 하고 싶은 말해도 방송에 나가니 너무 좋습네다."

김혜숙씨는 3대가 노동당원인 북한의 '성골'이었다. 그러나 핵과학자로 일하던 남편이 간첩 혐의로 보위부에 잡혀가며 삶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모든 것을 잃은 김씨는 두 차례에 걸쳐 탈북을 시도했고, 2007년 성공했다. 그는 "제가 얻은 마음의 평화를 북한 사람들에게 전했으면 합네다"며 방송하는 보람을 말했다.

새벽을 울리는 이들의 거침없는 입담은 국내외에서 인기다. 탈북자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북한에서도 아주 인기다', '이 방송 듣고 북을 떠나 자유를 찾을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들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이들이 "북한-중국 국경에 사는 사람치고 우리 방송 몰래 안 들어본 사람이 없습네다"고 자부할 만하다. 한국 사람 중에도 청취자가 적지 않다. 특히 택시기사 팬이 많아 "우리 목소리를 알아듣고 공짜로 택시를 태워 주시는 기사분들도 있다"며 자랑했다.

"북에서 몸이 다 망가져 와서 그러나, 비가 오니 온몸이 쑤시네"라며 너스레를 떨던 세 사람이 함께 마이크 앞에 앉았다. 대본을 든 채 PD의 큐 사인을 기다리는 표정이 진지하다. "북에서 몰래 숨죽여 듣던 방송을 내가 직접 한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네다. 단 한 사람만이 듣는 방송이래도 최선을 다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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