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3일 국회에 국정원 개혁특위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여야는 "국정원 직원이 정치관여 지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정치 개입 행위 내부 고발자에 대해 신분을 보장해 주는 쪽으로 연내(年內)에 입법을 마치겠다"고 밝혔다.

국정원 개혁을 논의하게 된 것은 국정원이 지난 대선 때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전직 국정원장과 간부들이 기소된 때문이다. 국회 특위의 첫 번째 과제는 당연히 국정원의 정치 개입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국정원은 다른 어느 국가기관보다 내부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폐쇄적이다. 그만큼 상관의 정치 개입 지시를 실무자들이 거부하기 어렵고, 내부 고발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 지시한 사람과 그 지시를 거부하지 않고 실행한 사람 모두를 처벌해 정치 개입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없애야 한다. 정치권 줄대기용 정보 유출도 이에 준해 처벌해야 한다.

국정원 정치 개입 역사의 뿌리는 불합리한 국정원장 인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능력과 전문성보다는 충성도를 기준으로 원장을 고르고 그 원장은 위부터 아래까지 정권에 줄을 세우는 인사를 되풀이해 온 데서 지금의 문제가 시작됐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국정원장부터 실무 요원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독립적인 인사 시스템을 만들고 그것을 안팎에서 감시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국정원 개혁도 북한의 동향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 대응하는 본연의 기능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킨다면 국정원 개혁이 아니라 국가적 자해(自害)가 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번 기회를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가능성은 전면 차단하되 대북 능력은 더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보기관이 북의 핵 개발 동향이나 국지 도발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면 어떤 재앙이 닥치는지는 국민 모두가 생생히 보았다. 북의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천안함·연평도 도발은 거꾸로 보면 모두가 우리의 정보 실패가 낳은 사태다. 지금 북은 2인자 장성택이 숙청되면서 향후 진로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은 간첩 남파를 계속하고 있고, 특히 요원 3만명을 동원한 대남 사이버전은 '필승의 무기'라면서 전력을 다해 강화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국정원의 대북 역량 강화야말로 어떤 국가적 과제 못지않은 시급하고도 중대한 문제다.

하지만 국정원에는 대북·대외 정보 분야의 베테랑 요원은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국정원의 대북 정보력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국정원을 대북 교섭 창구로 활용하면서 크게 약화됐다. 국정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 배석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있었다. 당시 북한에 있던 우리 측 인적(人的) 정보 자산은 거의 무너졌다고 해야 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여야는 자신들이 망쳐 놓고 헤집어 놓은 국정원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징벌(懲罰)하는 데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의 외국 정상 도청 사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국제사회에서 서로 생존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고 냉혹한 정보전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여야는 국정원 특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의 선후(先後)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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