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티스 스캐퍼로티 신임 한미연합사령관은 25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일정 수준의 주한미군은 작전 측면에서 한강 북쪽에 잔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2003년 한강 북쪽에 있는 주한미군을 2016년까지 모두 한강 남쪽의 경기도 평택 기지로 옮기기로 했었다. 신임 연합사령관은 이 기존 한·미 합의의 일부 수정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대상 부대로는 미 2사단의 포병여단(210화력여단)과 제23화학대대가 유력하다고 한다.

주한미군의 한강 이남 재배치는 미국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은 북한이 도발할 경우 한강 북쪽의 주한미군이 공격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동적으로 미국이 개입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인계철선(引繼鐵線)' 논리에 대해 거부감을 보여왔다. 그러던 미국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수도권을 겨냥한 북한 장사정포와 북이 실전 상황에서 사용할지도 모를 화학무기 위협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시간에 수만 발의 포탄을 수도권에 퍼부을 수 있는 장사정포 350여문을 비무장지대(DMZ) 부근 갱도에 숨겨 놓고 있다. 북한은 또 지난 10년 사이 사린 가스를 비롯한 치명적 화학무기 수천t을 휴전선 부근에 집중 배치했다. 북한이 우리를 선제(先制)공격했을 때 우리 군과 미군이 북한의 이런 무기들을 최단 시간에 무력화시키지 못하면 수도권이 대대적 피해를 보게 되고 우리 전방 진지와 공군 기지 등 한·미군의 전략 거점이 유린당할 수도 있다.

미 2사단 포병여단은 북한 장사정포 진지를 초토화할 수 있는 다연장로켓발사시스템 30여문, 227㎜ 로켓탄과 에이태킴스(ATACMS) 미사일 수백 발을 갖고 있다. 제23화학대대는 최고 수준의 화생방 공격 탐지·제독(除毒) 능력을 갖고 있다. 두 부대가 한강 북쪽에 남아 있게 되면 북한 도발에 대한 신속 대응과 도발 사전 억지 효과를 지닌다. 미군은 한강 북쪽 지역을 '전투지역전단'(FEBA)으로 분류하고 있다. 전 세계 미군의 작전 개념에선 FEBA 지역 미군이 공격받으면 미국 본토 병력이 자동 개입하게 돼 있다. 이 역시 북의 도발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미군이 한강 북쪽에 계속 남아 있을 필요가 있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전시작전권 인수에 대비한 전력 보강 사업이 몇년째 계속돼 왔는데도 현재의 한국군 능력으론 북 도발을 초기에 제압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 특히 북한의 장사정포에 대한 대응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면 전시작전권 인수에 큰 구멍이 뚫린 셈이다.

미군의 일부가 지금대로 한강 북쪽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면 미군 기지 이전을 전제로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경기도 동두천 지역에서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한·미 간의 전략적 합의와 별도로 지역에 대한 적극적 설득도 함께 필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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