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웹사이트 '우리 민족끼리'의 영어 홈페이지/인터넷 캡처
북한 웹사이트 '우리 민족끼리'의 영어 홈페이지/인터넷 캡처

지난 10월 28일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용 인터넷매체 《우리민족끼리》가 글을 하나 올렸다. ‘남조선언론문제연구원 최득필’이란 이름으로 쓴 것이었다. 북한의 선전 매체는 설령 개인 이름의 기고라 하더라도 모두 북한 당국의 뜻과 배치되는 내용을 싣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글 또한 북한 당국의 의견 그대로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최득필’이란 사람은 어디에도 등장한 적이 없는, 인터넷 은어로 말하자면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건이란 뜻)’ 인물이다. 실제 인물인지 가공의 인물인지조차 판별이 불가능하다.

통일부는 확인 요청을 한 기자에게 “직책이나 이름 모두 확인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 기사는 제목부터가 섬뜩하다. ‘괴뢰보수언론의 나팔수, 매문가들은 명심해야 한다’가 그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노골적인 욕설과 입에 담지 못할 막말들이 가득하다. 북한은 그러면서 왜 굳이 이들만을 지목해 협박과 비난을 퍼붓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는 밝히지 않았다.

북한이 지목한 ‘언론인’ 중에는 KBS의 정다은 아나운서도 들어 있다. 도대체 이들의 어떤 점이 북한 당국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이렇게 섬뜩한 협박을 한단 말인가. 그래서 북한이 지목한 ‘언론인’들이 북한의 신경을 건드리는 어떤 일을 했는지 자료를 찾아봤다.

◇《조선일보》에선 김태익·강인선·황대진 기자 등 3명 지목
북한이 지목한 언론인이 가운데 가장 많은 곳은 《조선일보》로 3명이다. 주인공은 김태익 논설위원, 강인선 국제부장, 황대진 정치부 기자이다.

이 중 김태익 위원은 올해 3월 14일 《조선일보》의 ‘만물상’ 코너를 통해 걸핏하면 욕설을 퍼붓는 북한 정권을 꼬집었다. 또한 지난 10월 1일에는 무단으로 방북해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고 각종 행사에 참석한 조모씨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참배는 무죄’라고 선고한 것을 비판했다.

강인선 국제부장의 경우에는 북한 관련 논평이나 글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는 주로 국제 문제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다. 그래서 당사자도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그가 쓴 글 중에 북한이 딱히 시비를 걸 만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황대진 기자의 경우에는 현재 통일문제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북한과 관련해 여러 비판적 기사를 많이 쓸 수밖에 없다. 그가 최근에 쓴 기사를 보면 정말 북한이 문제를 삼을 만한 기사들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으로 최근 10월 24에는 중국 외교문서를 통해 밝혀진 김일성의 1965년 ‘제2의 한국전쟁’ 기도 계획을 어느 매체보다 앞장서 단독 보도했다. 6?25 남침조차 인정하지 않는 북한인데, 제2의 6?25와 관련해서는 더욱더 거짓이라고 잡아뗄 것이 뻔하니 황 기자가 얼마나 미웠겠는가.

◇채널A 박종진 앵커와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

북한은 《우리민족끼리》에서 TV조선 박종진이라고 표현했다. TV조선에는 박종진 기자가 없다. 따라서 이는 채널A에서 시사프로그램 〈박종진의 쾌도난마〉를 진행하고 있는 박종진 앵커를 잘못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박 앵커는 2000년에 《매일경제》, 《MBN》 정치경제부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북한이 시비를 걸 만한 그의 발언은 여러 건이다. 9월 27일 방송에선 출연자의 발언을 재차 확인하며 북한이 군사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8월 29일 프로그램 오프닝에서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해 “왜 이러십니까, 무슨 그리 좋은 일이 있다고 잇몸이 보이도록 환히 웃어 보이십니까”라고 조롱하는 말투로 말한 적도 있다. 5월 19일에는 박 앵커가 북한을 자극하는 질문에 OX를 들게 한 적도 있다.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탈북자 출신이다. 주 기자가 올해 9월 24일에 작성한 ‘이산가족 상봉이 북한은 반갑지 않은 이유’란 제목의 칼럼을 살펴보면 이산가족이 북한 당국에 의해 적대계층으로 분류된다고 나와 있다. 그는 북한에 있어 이산가족 상봉이란 인륜의 문제가 아닌 대남 전술적 차원의 일환일 뿐이며, 적대계층에게 어쩔 수 없이 베푸는 호의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살라미 전술 언급한 《문화일보》 김상협 기자

《우리민족끼리》가 살라미 전술을 언급한 기자로 지목한 이가 바로 《세계일보》 김상협 기자다. 김상협 기자는 《세계일보》에는 없다. 아마도 《문화일보》에 근무하는 김상협 기자를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정치부 차장을 맡고 있는 《문화일보》 김 기자는 10월 2일의 ‘꿈쩍않는 韓?美 겨냥한 흔들기… 전형적 살라미 전술’이란 기사를 썼다. 그는 이 기사에서 10월 1일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박길연 북한 외무성 부상이 밝힌 요구사항을 나열하며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속내를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매일경제, 김세형 주필, 개인 블로그 글 때문인 듯

김세형 주필은 회사 일과 별개로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이 블로그에는 본인이 쓴 칼럼 외에 여러 북한 관련 기사들이 눈에 띈다. 여기저기서 퍼온 글이다. 그중에는 ‘北 망하게 내버려둬라’, ‘북한, 10년 못 버틴다’, ‘김정은 권력 물려받아? 택도 없을걸…’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이 적지 않다. 북한에선 당연히 ‘처단 대상’이 됐을 기사들이다.

◇《연합뉴스》 이경태 기자와 홍제성 기자

이경태 기자는 올해 10월 5일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한 북한의 새로운 경제개혁 방안을 보도했다. 그는 보도에서 북한이 처음으로 시장경제를 도입한 2002년의 7?1조치와 현재의 경제개혁 방안을 비교하며 시장경제에 개방적으로 변한 북한의 정책을 보여줬다. 동시에 “김정은의 권력체제가 안정화되려면 경제적인 성과를 올리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분석까지 제시했다.
홍제성 기자는 국제뉴스부에 근무한다. 부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북한을 전문으로 다루는 곳도 아니다. 눈에 띄는 기사라면 2010년 5월 중국 단둥에 1급 경비체제가 가동된 가운데 도착한 북한의 여객열차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탑승한 특별열차였다는 기사를 쓴 정도다.

◇《세계일보》 옥영대·조정진 논설위원

조정진 위원의 경우에는 몇몇 칼럼의 북한 관련 대목이 눈에 띈다. 우선 9월 25일에 실린 ‘길들이기’란 제목의 칼럼이 눈길을 끈다. 조 위원은 남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도발을 시도하는 북한의 계략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 예로 김영삼 정부 때의 서울 불바다 발언부터 천안함, 연평도 사건 등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북한이 갑자기 중단을 선언한 것도 류길재 통일장관을 길들이려는 전략에 불과하다고 했다. 9월 16일 ‘태극기’란 칼럼에서는 평양의 아시아 역도선수권대회 입장식에서 태극기가 게양된 일을 언급한 뒤 북한 인공기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국기에 비해 태극기가 지닌 우수성을 예찬했다.
옥영대 위원의 경우에는 왜 지목됐는지 가려내기가 어려웠다. 그가 쓴 글을 보면 북한이 문제 삼을 만한 대목이 거의 없다.

◇KBS <남북의 창> 진행하는 정다은 아나운서

정다은 아나운서는 2008년 KBS 34기 공채로 입사했다.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남북 관계의 현안을 다루는 시사 프로그램인 〈남북의 창〉 진행자다. 정 아나운서가 직접 북한에 관해 자극적인 발언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우리민족끼리》가 〈남북의 창〉이라는 프로그램 자체를 비난하기 위해 진행자인 정 아나운서의 실명을 거론한 것으로 추측된다.
〈남북의 창〉은 북한의 정황과 주민들의 삶에 대해 상세히 보도해오고 있다. 하지만 실제 리포트는 기자들이 담당하고 있다. 정다은 아나운서가 직접 리포트를 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북한 관련 보도 많은 KBS 소현정 기자

소현정 기자가 현재까지 보도한 기사 중 상당수가 북한과 관련된 내용이다. 2010년 3월 9일부터 통일부와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롯해 북한의 상황과 동태 등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주로 국제 이슈를 다뤘다.
올해 10월 24일에는 이산가족 상봉 연기 이후 대남 비난 수위를 높여오던 북한이 갑자기 유화적인 행보를 보이는 의도에 대해 분석했다. 소 기자는 ‘김정은이 경제개발을 위해 남북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말한 북측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하며 경제개발에 대한 필요성이 유화정책의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핵을 통해 억제력을 강화한다는 북측 외무성의 담화도 있는 만큼 북한의 의도에 면밀히 대응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지적을 인용했다.

◇MBC 〈통일전망대〉 진행 김현경 기자와 SBS 안정식 기자

김현경 기자는 1986년 MBC에 입사했다. 1995년부터 통일부를 주로 취재했으며 현재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통일전망대〉를 진행하고 있다. KBS 프로그램 〈남북의 창〉과 비슷한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다. 〈통일전망대〉에서 김 기자는 진행을 맡을 뿐 직접 리포트를 하지 않는다. 때문에 KBS 정다은 아나운서와 마찬가지로 최근에 직접 북한을 자극할 만한 발언을 한 사례는 없다. 그러나 김 기자가 통일부를 출입할 당시에는 북한이 싫어할 만한 각종 보도를 많이 했다.
SBS 안정식 기자는 기자 생활을 시작한 후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우리민족끼리》가 ‘이른바 대북관계박사라는 자도 있다’고 한 것은 그를 가리키는 말이다. 북한은 ‘안경식’이라고 잘못된 이름을 썼다. 안 기자는 SBS에서 남북관계 보도를 하는 것과 별개로 ‘북한 포커스(www.e-nkfocus.co.kr)’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 김성한·남성욱 교수, 문순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김성한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차관으로도 근무한 학자다. 그는 9월 26일 《조선일보》에 칼럼을 통해 대북 압박의 끈을 조이는 적극적 대응이 외교적 해법의 진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4월 30일에는 채널A에 출연해 “북한은 개성공단으로부터 상당한 혜택을 보고 있는데 그 혜택을 하루아침에 던져버리기에는 북한 당국도 어렵지 않을까.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 북한은 상당히 심사숙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대학의 남성욱 교수도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을 역임했다. 그는 10월 24일자 《중앙일보》에 ‘김정은 2년 통치의 3대 키워드’란 시론을 실었다. 그는 여기에서 김정은을 선대 통치의 영향력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불안한 권력자’라고 표현했다.

남 교수는 또 한반도미래재단(이사장 구천서)과 조선비즈가 공동으로 주최하여 10월 16일에 연 한반도미래포럼에서도 “5년 정도는 김정은 체제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5년 후에는 재정난, 핵 문제, 권력투쟁 등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북한 체제의 앞날을 암울하게 예측했다.

문순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역시 북한 관련 칼럼을 많이 기고하고 있다. 그 또한 북한 체제의 아픈 점을 자주 거론한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11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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