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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pub] 남한 정착 탈북여성, 노동당 간부 집을 사버렸다는데...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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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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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준공된 평양 은하 과학자거리의 모습, 이 거리에는 1,000여 세대에 이르는 21개 동의 다층살림집(아파트)과 학교, 병원, 탁아소, 유치원 등 공공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11월7일 북한의 '우리민족끼리'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비할 바 없는 커다란 우월성과 생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력사적 실천을 통해 실증 되였다”면서 평양시에 새로 건축된 아파트 몇 채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올해 평양시에 건설된 ‘은하과학거리’와 ‘김일성종합대학 교육자살림집’, 그리고 ‘체육인살림집’의 사진 몇 컷을 자랑삼아 내 보였다.
 
계속해서 신문은 “궁궐 같은 이 살림집들을 모두 평범한 로동자, 사무원, 체육인, 교원, 과학자들이 돈 한 푼 안내고 국가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이러한 현실은 나라의 모든 시책이 인민을 위해 펼쳐지는 공화국의 품에 안겨 사는 우리 인민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자본주의사회의 근로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고 썼다.
 
거짓말을 해도 좀 정도껏 하라고 꾸짖고 싶지만 북한의 이러한 감언이설에 속아 밀입북 했던 대한민국 국민도 있었다는 생각에 일단은 북한 아파트의 실상을 해부해 보기로 했다.   

   
 
북한의 모든 아파트는 공짜(?)

 
북한의 모든 주택은 국가의 소유물이다. 개인소유와 건축은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민들은 국가로부터 살림집(가정을 단위로 하여 사람들이 살림하는 집/북한 대사전)을 배정받아 생활하게 된다.
 
중앙과 도, 시, 군 인민위원회의 주택공급 부서들은 해당지역과 기관 및 공장들에 국가로부터 할당받은 아파트들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 ‘중앙당 아파트’, ‘체육인 아파트’, ‘과학자 및 노동자 아파트’이다.

북한에는, 어느 계층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 없어서 위와 같은 획일적 도시계획과 공급구도 속에 너도 나도 용해되어야 하지만, 아직도 평양시와 지방 도시들에는 이러한 계획과 무관했던 5~60년대의 건물들이 많아서 이름 하여 ‘혼성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아파트들에 북한주민들이 돈 한 품 안내고 입주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러한 주택공급 시스템이 도입된 순간부터 북한주민들은 당국이 의도한 ‘충성경쟁’에 빠져버림과 동시에 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는 ‘소유욕’을 상실해 버린다.

한마디로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은, ‘가정을 단위로 하여 사람들이 살림하는 집’을 미끼로 북한사람 모두를 맹목적인 충성경쟁 속에 처넣었으며 ‘내 것’이 필요 없는 ‘사회주의 노동환경의 도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아파트 공급을 통해 북한의 계급구조를 보다
 
최고급주택인 ‘단독고급주택’은 노동당 및 내각 부부장급 이상 또는 북한군 소장 이상의 고위간부들에게 배정되며 이들을 북한에서는 5호 주택 공급대상자라 부른다.
 
4호주택(신형고층아파트)은 중앙당 과장급 및 내각 국장급, 인민배우, 공훈예술인, 대학교수, 기업소 책임자 등에게 배정된다. 3호주택은 중급의 단독주택과 신형아파트로서 중앙기관의 지도원이나 도급기관의 부부장 이상 또는 기업소부장 및 학교교장 등에게 배정된다.
 
2호주택은 일반아파트로서 도급기관의 지도원과 시·군의 과장급 및 기업소의 과장급, 그리고 학교교원 등에게 배정된다. 1호주택은 일반주택과 농촌문화주택 및 구옥 등이 해당되며 일반근로자와 사무원, 협동농장원, 농촌지역 주민 등에게 배정한다.
 
이처럼 불합리한 제도를 살면서도 불합리성을 모를뿐더러 오늘도 ‘사회주의 만세’를 외치는 북한주민들의 의식구조는 다음기회에 전하기로 하고 아래에, 북한식 주택공급구조가 ‘박살’하고 ‘붕괴’되는 과정을 피력하기로 한다.
 
탈북여성 박주희(가명 39살), 都黨간부의 집을 사다
 
2009년 4월, 평소부터 알고 지내던 한 탈북여성이 필자를 찾아왔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다짜고짜 “국장님, 나 이번에 도 당 선전비서의 집을 사버렸어요!”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도 당 선전비서면 도지사 버금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선전, 선동을 중시하는 북한의 특징상 그 이상일 수도 있는 권력을 가진 사림이 도 당 선전비서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남한에 와서 생활하는 탈북자가 북한 주요도시의 도 당 간부의 집을 ‘사버렸다’는 것이 도대체 믿어지지가 않았다.
 
사연은 이랬다. 2004년 입국, 입국하자 바람으로 서울의 한 음식점에 취직해 일해 온 박 씨는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와 형제들을 늘 그리워했고 그리움과 미안함을 덜기위한 방책으로 꼬박 꼬박 ‘어머니 몫’으로 저축을 해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1년에 두 번 정도 브로커를 통해 북한으로 송금을 했다. 한 번에 보내는 돈은 중국인민폐로 평균 1만 위안, ‘중국에서 일해서 번 돈이니 안심하고 쓰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는 그녀는 5년 후 음식점 사장이 되었고 “음식점도 개업한 김에 큰마음을 먹고” 어머니와 언니, 오빠의 몫으로 단번에 5만 위안을 송금했다고 했다.
 
그때로부터 1개월 뒤, 북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네 덕에 도 당 선전부장의 집을 샀다는 연락이 왔다”고 박 씨는 자랑했다.
 
당시 인민폐 5만 위안이면 북한 돈 약 2천만 원, 화폐개혁 이전 북한 노동자 한 달 월급이 800~1000원이었으니 북한 돈으로는 어마어마했지만 다시 미화로 환산(암시장 환율)해 보면 약1만 달러로, 북한의 고위 간부가 살던 아파트를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은 그리 요란한 것이 아니었다.
 
부인의 2차 간경화복수를 치료하기 위해 엄청난 돈이 필요했더라는 도 당 선전비서는 그날부로 탈북자 박 씨네가 살던 일반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도당 간부들은 물론 보안부와 보위부, 일반 주민들까지 알아버린 이러한 ‘사태’는 묵인되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사태’와 ‘사태’로 이어지는 판국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배급에만 근거했던 북한의 주택공급체계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러한 사태는 주로 탈북자들에 의해서 주도된다는 이야기가 북한 내부에 퍼지기 시작했다. (계속)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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