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외교문서에서 드러난 '北의 제2 한국전쟁 준비']

金, 6·3사태·베트남 파병 등으로 어수선한 南韓 노려
"유엔軍 철수시키라" 주장하며 1·21사태 등 끊임없는 도발
1975년 訪中때도 제2의 남침 요청… 中 정부 부정적 반응
중국 외교문서를 통해 김일성이 1965년 '제2의 한국전쟁'을 계획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북한이 1950년 6·25전쟁 이후에도 '무력 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고 구체적인 전쟁 시기와 방법, 심지어 중국의 파병 문제까지 고민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왜 1965년인가?

북한이 제2의 남침을 저울질하던 1965년은 우리 정부가 베트남에 전투 부대 파병을 시작한 해다. 앞서 1964년 6월 국내에서는 한·일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6·3사태가 일어나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미국과 남한의 군사력이 분산되고 국내 사정이 어수선한 틈을 타 재침(再侵)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김일성이, 1958년 친소(親蘇) 및 친중(親中)파 인사들이 집단지도체제를 주장하며 그에게 도전했던 이른바 '종파사건'을 진압한 후 주체사상을 만들고 반대파 숙청을 하면서 유일 독재 체제를 강화하던 시점이었다.

1965년 4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김일성(왼쪽) 당시 북한 수상은 현지 사회과학원을 방문해‘북반부 혁명기지’‘남조선 혁명역량’‘국제혁명역량과 단결’등 3대 혁명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그해 김일성은 마오쩌둥(오른쪽) 주석 등 중국 측 인사들과 ‘제2 한국전쟁’을 계획하고 중국의 파병(派兵) 지원 등을 논의한 것으로 중국 측 연구 결과 드러나고 있다. /조선일보DB
1965년 4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김일성(왼쪽) 당시 북한 수상은 현지 사회과학원을 방문해‘북반부 혁명기지’‘남조선 혁명역량’‘국제혁명역량과 단결’등 3대 혁명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그해 김일성은 마오쩌둥(오른쪽) 주석 등 중국 측 인사들과 ‘제2 한국전쟁’을 계획하고 중국의 파병(派兵) 지원 등을 논의한 것으로 중국 측 연구 결과 드러나고 있다. /조선일보DB

북한은 1965년 2월 26일 유엔에 "진정으로 유엔 헌장에 부합되게 행동하려면 유엔군을 철수시키라"고 주장했고, 이어 4월에는 적화통일을 위한 '3대 혁명역량'의 강화를 강조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1965~ 1966년 무렵 북한과 소련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던 반면 중국과는 밀착된 시기였다"고 했다.

◇"북 1962년부터 재침 준비"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과 북한의 이른바 '혁명 1세대'들은 제2의 남침 시도와 관련된 긴밀한 대화를 자주 나눴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외교협회가 발행한 전문지 '외교' 2008년 7월호에 실린 '김일성 발언록'에 따르면 1965년 중국 마오쩌둥은 김일성에게 "남조선 인민이 게릴라 투쟁을 시작하도록 (북한이) 지도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김일성은 이에 대해 "남조선에는 해안이 많고 산이 벌거벗었으며 교통이 비교적 발달해 있는 데다 미군까지 주둔하고 있다"고 답했다.

중국 '텅신(騰迅)평론' 등에 지난 3월 기고된 글에 따르면 김일성은 또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이었던 양융(楊勇)에게 "우리는 이미 베트남에 사람(군사고문단)을 보내 그들의 경험을 배우고 있다"며 "더 늙기 전에 한 번 더 (남쪽과) 겨뤄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 이 짐을 아랫대로 물려준다면 우리가 싸우는 것보다 반드시 더 잘한다는 법도 없다. 경험 있는 우리가 이 무거운 짐을 질 테니 당신들과 함께 싸워보면 어떻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양융은 6·25 당시 중국의 인민지원군 부사령관으로 참전했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1962년 12월 당 중앙위 제5차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하면서 사실상 남침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1965년 북한의 재침 시도는 행동에 옮겨지지 않았지만, 이후 1972년 남북 7·4공동성명이 나올 때까지 1·21 사태, 푸에블로호 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침투 사건 등을 일으키며 대남 도발 수위를 높였다.

중국은 이후 닉슨 미국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 등을 계기로 북한의 무력 통일 방침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으로 변했다. 김일성은 1975년 4월 중국을 방문해 베트남 공산화 통일을 거론하며 제2의 남침을 요청했으나 중국 정부는 이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력 통일 기회는 이미 상실"

북한은 지난 6월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보다 상위 규범인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39년 만에 개정했지만, 한반도 적화통일을 규정한 제1조 4항('조국 통일과 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위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 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은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중국 전문가들도 시대적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고 남·북한의 군사력 수준도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북한의 무력통일 시도는 이미 현실성을 상실했다고 보고 있다. 다만 핵무기 보유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청샤오허 중국 런민대 교수는 24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리는 평화문제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발표문을 통해 "중·미 관계의 긴장 완화 및 한·중 외교 관계 수립으로 인해 북한은 이제 무력 통일이라는 역사적 기회를 상실했다"고 했다. 그는 "북한의 군사 도발은 과거처럼 러시아와 중국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며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한반도에서 무력 사용을 지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무력을 통한 정책 목표 실현 또한 반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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