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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성폭력 44%, 가정폭력 37% 탈북 여성을 어찌할꼬?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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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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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있을 때 엄마는 그럴 필요없다고, 우리 가족끼리 어떻게든 잘 살아보자고 했어요. 저는 도저히 이렇게는 못살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래서 2007년 1만위안(약 175만원)을 받기로 하고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의 남자에게 시집갔습니다.”

지난 9월 30일 저녁, 경기도 광명시의 한 카페. 충치가 생겼는데 치과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음료수만 들이켜던 정혜진(가명·36·여)씨는 탈북자. 남한에 정착한 지 2년 됐다. 정씨는 요즘 서울 구로구의 한 빌딩에서 청소일을 하고 있다. 그 빌딩에서 일한 것만 1년 가까운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정씨가 탈북자인지 모른다. 정씨는 “산전수전 다 겪고 났더니 아예 말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기자와 얘기를 하는 중간에도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거나 억양을 고쳐 말하기도 했다.

중국 헤이룽장성의 “비쩍 마른 아저씨”에게로 시집간 뒤 정씨는 매일같이 맞고 살았다. 정씨를 데려오기 위해 2만5000위안(약 440만원)을 썼다는 정씨의 남편은 정씨가 일을 못한다고, 못생겼다고 계속 폭력을 행사했다. “한번은 귀를 맞았는데 눈알이 흔들리는 것같이 어지러워서 쓰러졌어요. 점심 먹은 것을 다 토해냈더니 남편이라는 사람이 제 머리를 발로 밟아서 토사물 위로 엎어졌어요.” 정씨 남편은 옆집에 놀러 가서 ‘오늘 힘 좀 썼다’며 정씨를 때린 것을 자랑하기도 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길도 길이지만, 돌아가도 남편이 찾으러 올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예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탈출하자는 생각이 들었지요.”

2009년 정씨는 중국 산동성 칭다오에 자리를 잡았다. 북한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북한 사람들이라면 저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더군요.” 한 부부에게 사기를 당해 그나마 모아둔 돈을 다 잃고 나니 중국에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사라졌다. “남한에 가면 돈도 주고 일자리도 구해준다더군요.” 브로커에게 3500달러를 주고 남한 땅을 밟았다. 이곳에서 정씨는 또 다른 아픔을 겪었다.

◇ 탈북자 총 2만4934명. 69%가 여성, 30대 35%, 20대 26%, 40대 18%로 젊은층 비중 높아

“많지 않은 돈이지만 정착지원금도 받았고, 이제는 여기서 번듯하게 자리를 잡아보자고 계획했어요. 친구를 통해 같은 처지의 남자 한 명을 소개받았지요. 마치 남한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해서 무척 세련돼 보였는데, 석 달 정도 같이 살다보니 아니더군요. 제가 결혼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폭해지기 시작하더니, 처음에는 허공에 던지던 물건이 나중에는 저를 향해지고 손찌검까지 했어요.” 정씨는 남자에게 몇 달을 ‘헤어져 달라’며 애원한 끝에 혼자가 될 수 있었다.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현재 탈북자 수는 2만4934명. 이 중 여성이 69%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2012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를 보면 탈북 여성의 약 35%는 30대고, 20대가 26%, 40대가 약 18%를 차지하고 있어 젊은층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이들 중 많은 수는 체제에 대한 불만과 자유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식량부족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탈북을 결심했다. 특히 탈북자 남성의 39.4%만이 탈북 동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꼽은 것에 비해, 탈북자 여성은 절반이 넘는 57.4%가 경제적 어려움을 주요 동기로 꼽았다.

이금순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소장은 탈북자 중 여성의 비중이 유독 높은 것에 대해 북한 사회가 매우 가부장적이라는 것을 이유로 내놓았다. 북한의 여성 인권은 남성보다 더욱 낮은 편인데, 특히 가정폭력은 당연시되다시피 한다. 이 소장은 “식량배급제가 붕괴돼 여성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며 “남성이 나 몰라라 일을 안 하는 사이, 여성이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국경을 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미순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도 “북한 사회의 가부장적 분위기는 우리네 1950~1960년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국경을 넘었다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여성이 많다. 강수진 탈북여성연대 대표는 “국경 경비가 강화되면서 못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각종 고초를 겪으며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탈북 여성 중 성 관련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44.3%. 남한 여성의 평균 성폭력 피해율이 4.7%에 그치는 것을 봤을 때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 가정폭력 등 신체 폭력을 경험한 탈북 여성도 37.1%에 달해 남한 평균의 15.3%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강 대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북한 안에서는 가정폭력에, 탈북 과정에서는 성폭력에 시달리다 보면 심리적으로 굉장히 많은 상처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의 같은 조사에서 탈북 여성의 심리적 상태를 보면 우울증이 의심되는 여성이 전체의 26.4%에 달해 남한 평균 우울증 발병률 6.7%보다 훌쩍 높은 수치를 보인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유병률은 57.6%이고, 자살을 고려하거나 시도한 비율도 45.7%에 달한다. 김미순 소장은 “탈북 여성은 과거, 현재, 미래에서 모두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북한에서의 고단했던 삶과 탈북 과정에서 겪은 상처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남긴다면, 정착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을 가져오기도 한다. 김 소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탈북 여성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암담하다는 얘기를 무척 많이 들었다”며 “특히 북한에 가족이 남아 있는 여성들은 그나마 번 돈을 어떻게 해서든 북한으로 보내주려고 하다가 더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의 조사를 보면 남한에 정착하고 나서도 성매매를 권유받은 적이 있다는 탈북 여성이 전체의 30%에 달한다. 성매매를 권유받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탈북자가 남한 생활에서 가장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경제적 부문(57.6%)이다. 특히 남성(46.5%)보다 여성(64.2%)이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탈북 여성의 74.3%는 스스로 중하류층 이하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탈북 여성의 평균 임금은 122만9000원. 남성 평균의 170만6000원은 물론, 남한 여성 평균의 195만8000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 탈북 과정에서 겪은 고초 때문에 사회와 사람에 대한 불신감 커져 피해 입어도 말 하려 하지 않아

탈북한 지 7년, 남한에 정착한 지 4년 되는 탈북 여성 김정희(가명·32)씨는 4년 동안 한 번도 휴일에 쉬어본 적이 없다. 경기도 남부의 양계장에서 일하는 김씨는 한 달에 1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으면서 매일 일을 한다.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씨는 “주변에 함께 탈북했던 사람이 두 명이 더 있지만, 세 명 중 150만원 넘는 월급을 받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직업을 가진 탈북 여성 중 31.7%는 단순 노무직, 28.1%는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다.
   
 

정규직 근로자는 49.8%에 불과하고, 전문가 또는 관련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은 전체의 6.5%에 그친다. “그래도 가족이 없고, 작지만 몸 누일 방이 있는 저는 나은 편이죠. 한 친구는 같은 탈북자끼리 결혼했다가 매일같이 욕설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요.”

여성가족부가 ‘폭력 피해 탈북여성 맞춤형 자립지원방안 연구’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조사한 바로는 탈북 여성의 지난 1년간 부부폭력 발생률은 77.2%에 달한다. 얼마 전에는 탈북 여성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협박을 일삼던 중국 동포가 구속 수감되기도 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지난 8월 20일 중국 동포 이모(38)씨를 가정폭력 혐의로 구속 수감했다. 2007년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김모(44)씨와 2008년 결혼한 이씨는 김씨가 폭력을 견디다 못해 올해 7월 집을 나가자 김씨의 행적을 찾아내 피 묻은 손으로 냉장고 문짝에 “죽여버리겠다”는 글을 남길 정도로 과격한 행동을 보였다.

관내 탈북자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아 김씨를 알고 지내던 마포경찰서 보안계 송지원 경위는 올해 들어 김씨의 안색이 나빠진 것을 포착하고 연유를 캐묻다가 가정폭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송 경위는 “탈북자나 중국 동포 가정에는 유독 가부장적 분위기가 강하다”며 “의지할 곳 없는 탈북 여성들은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문제에서도 사각지대에 있다”고 말했다.

아는 사람이 없을 뿐더러 탈북 과정에서 겪은 고초 때문에 사회와 사람에 대한 불신감을 가진 탈북 여성들은 피해를 입어도 자신의 얘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올 8월부터 정부는 서울시 가정법률상담소 중구지부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와 천주교성폭력상담소 등을 북한 이탈 여성 폭력 피해 상담·치유 전담센터로 운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정착지원금을 주거나 직업 훈련을 시켜주고, 임대주택을 알선하는 등의 제도는 있었지만 심리적·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고 관리하는 제도를 마련하기는 이번이 처음.

상황의 심각성에 비해 해결 방법을 모르는 탈북 여성에게 대안을 마련해 주자는 취지에서다. 천주교성폭력상담소의 김미순 소장은 “탈북 여성이 심리적·육체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도 상담소나 지원센터를 잘 찾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밝혔다.

탈북 여성은 대개 탈북과 정착 과정에서 겪은 인권 유린 상황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남한 여성은 이제는 인식이 바뀌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만, 아직 북한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김 소장의 말이다.

그래서 전담센터에는 같은 탈북자 여성이 상담사로 배치되어 있다. 김 소장은 “동료 상담사라고 해서 같은 탈북 여성이 상담사 교육을 받고 상담 업무를 전담하는데, 아무래도 탈북 여성들이 편하게 느끼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고, 혹여나 속 깊은 얘기를 해도 누설이 될까 두려워하던 탈북 여성도 비슷한 경험을 한 동료 상담사에게는 좀 더 쉽게 얘기를 털어놓는다는 것.

김 소장은 “탈북자들이 자주 가는 병원, 탈북자 모임 등을 통해 방문 상담도 하고 있다”며 “탈북 여성에게 경제적 지원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정신적 상처를 씻고 앞으로 활기찬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의지를 북돋아 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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