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출신 유철진(39·가명)씨는 1999년 탈북했다.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 식량 상태가 최악일 무렵이다. 외과의사 아버지를 뒀지만 집안 사정은 넉넉하지 못했다. 군 복무 시절에도 배급을 받지 못해 배를 곯았다. 장사 밑천만 마련되면 돌아올 생각으로, 두만강을 건넜다. 이후 14년간 ‘시장경제’를 표류(漂流)하던 유씨가 서울 강남경찰서의 단속에 적발됐다.

유씨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각종 변태 서비스를 해주는 패티시 업소를 운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씨는 “북한에 있는 여동생에게 돈을 부치려고 그랬다”고 짤막하게 진술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7일 “작년 9월부터 최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변태 성행위 업소를 운영하면서 건당 8만~13만원을 받고 동물흉내를 내거나, 채찍으로 때리는 등 각종 변태 서비스를 제공한 혐의로 유씨와 여종업원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는 가게에 채찍과 수갑, 각종 성(性)기구를 갖춰놓고 상황극을 연출하면서 유사(類似)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작년 12월 한차례 단속을 했음에도 패티시 업소가 밤마다 영업을 계속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유씨와 종업원 등을 업소에서 검거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유씨는 2003년 한국에 정착했다. 정착금 2700만원을 쥐고 출발한 ‘시장경제’는 녹록찮았다. 취직이 가장 문제였다. 중소기업 직원, 운전기사, 택배회사 등 수십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고 한다.

지난달 23일 본지 기자와 만난 유씨는 “북한 출신에 대한 편견이 있는지 고용을 꺼리는 눈치였다”며 “퀵서비스, 발마사지 같은 일을 전전했다”고 말했다.

2011년에는 엎친데덮친 격으로 발마사지 업소를 함께 열기로 한 동료가 2900만원을 갖고 달아나 버려 이후 늘 빚에 쪼들렸다. 북한에 있는 여동생(33)은 유씨가 부치는 돈이 없으면 굶기 일쑤였다.

올 3월 유씨는 주변의 제안을 받고 건물 한층(약 50평)을 통째로 빌려 ‘패티시 사업’을 시작했다. 한 달에 1000만원도 넘게 벌 때가 있었지만, 단속 이후 회원제로 전환하면서 수입은 쪼그라들었다.

경찰은 원칙에 따라 유씨의 업장(業場)을 폐쇄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나머지 34개 유사 성행위 업소도 현재 철거를 진행하고 있다”며 “사정이 딱하지만, 변태 성행위 업소를 눈감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요즘 퀵서비스 일을 다시 알아보고 있다. “북에서는 어떻게 살든 내게 돌아오는 몫이 있는데 한국은 완전히 다르다”며 “여동생을 한국에 데려오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돈을 모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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