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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 "학교 다녀서 뭐해요? 수업은 못 알아듣고 애들은 간첩이냐고 놀리는데"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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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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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나은미래·아산나눔재단 아산미래포럼 기획 시리즈 ② 탈북 청소년
탈북 청소년 약 6220명 최근 4년간 6%가 학교 포기
일반 학생 중도탈락률 6배··· 고학년일수록 비율도 늘어
탈북 과정서 겪은 불안함도 학교생활 적응하는데 방해
입국 초기에 소통 가르치고 일대일 교육으로 안정 도와야
"학교에 계속 다녀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웠어요."

김성민(가명·19)군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성민군은 지난해 10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수업 내용이 도무지 이해되질 않으니, 공부가 재미없었다. 학교에 가면 온종일 엎드려서 잠만 잤다. 수업 태도가 불량하다고 지적하는 교사와 싸운 적도 있다. 교내 '문제아'로 낙인찍힌 그가 자퇴하겠다고 말했을 때, 말리는 사람도 붙잡는 사람도 없었다.

중국, 몽골을 넘어 한국 땅에 들어온 지 벌써 10년째. 성민군은 북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남한에 먼저 들어온 엄마를 따라 홀로 중국 국경 철조망을 넘었다. 어렵게 밟은 한국 땅. 그는 어눌한 말투 때문에 초등학교 내내 놀림을 당했다. 중학교 때는 "너 간첩 아니냐"며 시비를 거는 아이들을 흠씬 두들겨 팼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책상에 엎드려있는 시간은 늘기만 했다.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어요. 동급생들과 사용하는 언어도, 경험한 문화도 전혀 다르니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저뿐만이 아니에요. 고1 때 같은 반에 북한에서 온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어딜 가도 손가락질당하는 것 같다'면서 힘들어했어요. 결국 괴롭힘만 당하다가 두 달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캐나다로 이민을 갔습니다."

국내에 거주하는 북한 이탈 주민 수가 약 2만5000명을 넘어섰다. 그중 탈북 청소년(9~24세 이하)은 약 6220명으로 25%에 달한다(2012년 12월 기준, 통일부). 그러나 이들 대다수가 보이지 않는 차별과 교육 격차 때문에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4년간 학교를 그만둔 탈북 청소년은 256명으로, 전체 탈북 학생의 6%를 차지한다. 일반 학생 중도 탈락률(1%)의 6배나 된다(2012 교육부). 전문가들은 "재학생 중에서 수업을 못 따라가거나 학교 부적응을 겪는 이들을 합하면 훨씬 많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 일반학교에 진학했다가 상처받은 탈북 청소년들이 학교를 이탈하고, 남한 사회에 부적응하고 있다. / 조선일보 D

◇연령 높아질수록 중도 탈락률 높아

학년이 올라갈수록 탈북 청소년들의 학교 이탈률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 4년간 초등학교를 그만둔 탈북 청소년은 전체 재학생의 2%에 불과하지만, 중학교를 그만둔 학생은 8.5%, 고등학교는 13%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학교 부적응을 호소하며 대안학교를 찾는 탈북 청소년도 부쩍 늘었다. 2010년 일반 학교를 자퇴하고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 들어간 학생이 5명이었는데, 올해는 총 37명으로 3년 새 7.4배로 증가했다. 일반학교를 거쳐온 학생들이 여명학교 전체 인원의 약 42%를 차지할 정도다.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은 "대안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한 아이들보다 일반 학교에서 상처받고 온 학생들을 상담하고 교육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두 배로 든다"면서 "사용하는 언어·문화·환경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단계별 학습 지도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도 많다. 2009년 탈북한 이민수(가명·22)씨는 지난해 S대 공과대학에 특례 입학했다. 꿈꾸던 대학이었지만, 수업 자체를 따라가기 버거웠다. 매일 도서관에서 밤을 새워도 성적표엔 F학점이 가득했다. 북한에서 중국을 넘어오면서 학업이 중단된 상태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수학·과학 공부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2년간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자 이씨는 자살을 시도했고, 현재 휴학을 한 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2006년 탈북한 성지은(가명·21)씨 역시 S여대에 입학했다가 6개월 만에 자퇴했다. 대학 동기들과 교육 격차, 경제적 박탈감을 느낀 성씨는 한국 생활을 접고 지난해 중국을 거쳐 노르웨이로 떠났다. 실제로 탈북 청소년의 37%가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살고 싶다'고 희망할 정도로, 학교 부적응은 탈북 청소년들의 남한 사회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

◇심리적 트라우마·가족 불화… 학교 부적응으로 이어져

탈북 과정에서 경험한 심리적 불안감은 학교 부적응을 통해 증폭되고 있다. 지난 2008년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 조사에 따르면 탈북 청소년의 60%가 불안 증세를 느끼고 있고, 약 30%가 약물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우울 증세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탈북 과정에서 부모와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던 청소년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진다. 한 살 때 북한에 홀로 남겨졌던 홍진희(가명·13)양은 9년 만에 한국에서 엄마를 만났다. 오랜만에 함께 살게 된 엄마와는 사사건건 부딪쳤다. 진희양은 9년간 자신을 버린 엄마가 미웠고, 엄마는 또래 아이들보다 학업도 뒤처지고 자꾸만 어긋나는 딸이 못마땅했다. 결국 진희양은 가출을 반복했고, 학교를 결석하는 일도 많아졌다.

7년 만에 남한에서 엄마를 만난 김정원(가명·16)군도 사춘기를 겪으면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김군의 엄마도 어렵게 데려온 아들과 갈등이 깊어지자,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김군은 이내 중학교를 자퇴했고,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 김선화 서울북부하나센터 사무국장은 "부모는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데다 남한 사회에서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녀의 심리적 불안감을 충분히 보듬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을 낳는다"면서 "가족의 불화는 자녀의 학교 이탈로 이어지고, 남한 사회 부적응을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2009년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탈북 학부모 4명 중 1명이 '자녀와 대화를 못 하겠다'고 답했고, '학교에서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는지 모른다' '자녀 진로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부모가 25%에 달했다.

◇징검다리·맞춤형 교육으로 통일 미래 세대 키워야

전문가들은 "북한과 남한 사회를 모두 경험한 탈북 청소년들이 통일 이후 국가의 중요한 인재가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년간 탈북 청소년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대학 졸업 및 자립에 성공한 이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탈북 청소년 10명 중 한 명이 기초 학력에 미달한 상태이고, 학업 부진을 겪는 이들도 다문화 학생들의 5배에 달한다. 박상영 셋넷학교 대표교사는 "어학연수를 갈 때도 1~2년간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처럼,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브리지(징검다리)'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사의 역할과 부모 교육의 중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선화 북부하나센터 사무국장은 "정부가 탈북 청소년이 다니는 일반 학교에 지원금을 주고 교사 멘토링 제도를 도입했는데,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학생의 학교 적응률이 극과 극"이라면서 "탈북 청소년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양육해야 하는지, 교사와 부모를 위한 교육 및 워크숍이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민관이 협력하는 방법도 있다.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은 "대안학교가 일대일 맞춤형 교육을 통해 브리지 역할을 하면, 탈북 청소년들의 일반 학교 적응률이 높아질 수 있다"면서 "대안 교육 시설이 안정적으로 탈북 청소년을 교육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재성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은 "일반 학생보다 이중 삼중의 문제를 안고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탈북 청소년을 보듬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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