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입국 초기교육
탈북 청소년이 12주간 받는 하나원의 사회 적응 교육
기본 교과목 위주로 구성돼 실질적인 적응엔 도움 못 줘
편의점 간판 못 읽어 아르바이트 면접 늦기도
실생활 관련된 내용 다루고 심리 정서 지원도 강화해야

입국 초기부터 맞춤형 교육으로 탈북 청소년들의 학교 적응률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 조선일보 DB
입국 초기부터 맞춤형 교육으로 탈북 청소년들의 학교 적응률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 조선일보 DB

"열둘 덜기 둘 같기는 열(12-2=10). 북한에선 이렇게 읽어요."

은주희(가명·24)씨가 하얀 종이에 간단한 뺄셈 문제를 적으며 말했다. 은씨는 2009년 중국을 거쳐 홀로 한국 땅을 밟았다. 탈북 직후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이하 하나원)에서 3개월간 교육을 받으면서, 은씨는 생소한 용어 때문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이런 어려움은 지난 3월 대학에 입학한 뒤로도 계속됐다. '대중문화의 이해'라는 교양 과목 수업 때 프레젠테이션(PT) 발표를 하던 은씨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욘사마 열풍과 연관 지어서 설명해달라'는 질문 때문이었다. 은씨는 "욘사마란 단어를 몰라 당황했다"고 설명했다. "하나원에선 영어 단어를 외웠던 기억이 대부분인데, 입국 초기에 읽고, 쓰고, 말하는 방법이나 독서·토론 방법을 배웠다면 남한 사회 적응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란 아쉬움도 전했다.

◇당장의 '점수 올리기'보다 소통·정서 교육 강화돼야

국내 입국한 탈북 청소년들은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은 뒤, 12주 동안 하나원에서 사회 적응 교육을 받는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기본적인 교과목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구성돼 있다. 주말에는 난타, 종이접기 등 문화예술 수업이 진행된다. 전 과목이 고루 분포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맞춤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하나원을 나온 이욱현(가명·18)군은 아르바이트 면접 날 1시간을 헤맸다. 편의점 간판을 읽지 못해 주위를 빙빙 돌았기 때문. 이군은 "하나원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수학 수업을 들으면서 '공부는 안 되겠구나'하고, 일반 학교 진학을 포기했다"면서 "남한 사회 문화나 적응 노하우 등 실생활에 꼭 필요한 내용을 배웠다면 더 유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영 셋넷학교 대표교사는 "3개월 동안 영어 단어 성적을 올리는 학습 중심 교육보다는 한국 사회 전반을 쉽게 체득할 수 있는 통합 교육이나 심리 정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 조사 이후 80여일…'방치'와 '인권' 사이

북한 이탈 주민들은 입국 직후 국정원에서 최대 180일 동안 합동조사를 받는다. 아동·청소년의 평균 조사 기간은 3~7일. 남은 기간에 이들은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방 안에 갇혀 지낸다. 5~6명이 한 방에서 TV를 시청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다. 전문가들은 "조사가 끝난 아동·청소년만이라도 남은 기간에 한국 문화 관련 시청각 자료나 위인전 등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아동·청소년은 성인보다 사회 적응이 빠르기 때문에, 남은 80여일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상석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부소장은 "국정원 조사가 끝나고, 각 아동·청소년의 심리·인적성 검사를 실시해서 하나원에 전달한다면, 하나원에서도 시간을 절약하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교육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서 "입국 초기 6개월 교육이 남한 사회 정착 후 2년 교육보다 효과가 높다"고 설명했다. 김선화 서울북부하나센터 사무국장은 "2010년 북한이탈주민지원에관한법률이 개정되면서 '최대 180일'이란 조사 기간이 삽입됐는데, '아동·청소년의 경우 그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달거나 그에 적합한 인권적 배려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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